한대수 책 출간 "노래속 사연 모으니 폭풍같던 인생이더라"

편집부 / 2015-03-12 11:20:19
4월 1일 '한대수 더 북'…영화 '유공자'에도 출연


한대수 책 출간 "노래속 사연 모으니 폭풍같던 인생이더라"

4월 1일 '한대수 더 북'…영화 '유공자'에도 출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록스타들이 오래 못 살아요. 밴드 비지스가 비슷한 연배인데 한 명 빼고 다 저세상 사람이 됐고 조 카커도 떠났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제가 가기 전에 작품을 하나 더 남기도록 생각해주는 것 같아요."

'히피 문화의 선구자'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록 뮤지션 한대수(67)가 오는 4월 1일 새로운 책 '한대수 더 북'(북하우스)을 출간한다. 그는 그간 사진집과 자서전을 여러 권 냈다.

그는 공교롭게도 올해 봄 책뿐 아니라 영화 '유공자'에 출연했고, 4월 40주년 앨범을 내고 공연도 한다. 그는 갑작스럽게 맞물린 활동에 대해 특유의 솔직함으로 이렇게 에둘렀다.

지난 11일 자택이 있는 신촌에서 만난 그는 "책을 쓰며 내 음악인생 40년을 돌아보게 됐다"며 "한 마디로 폭풍 같더라. 신기한 건 음악을 만들었을 때의 기억이 정말 생생했다. 그러니 글 쓰는 재미가 있더라. 바로 내 인생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

'한대수 더 북'은 그가 발표한 136곡의 가사와 악보를 수록하고 50곡에 얽힌 사연, 그의 사진작품 20장 등 총 450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됐다.





그는 이날 책에 써내려간 곡들의 사연을 들려줬다. 멜로디에 알알이 박힌 이야기가 모이니 그의 인생 스토리가 됐다.

1974년 발표한 1집 수록곡 '옥의 슬픔'은 중학교 시절 조부모와 함께 연세대학교 사택에 살 때를 떠올려 쓴 곡이다. 할아버지 한영교 씨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신학대 초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수위 두 명이 사택을 지켰는데 위엄이 있고 마음대로 들락거리기 어려운 분위기였죠. 조부모는 명사여서 바쁘셨고 동네 친구도 없어 참 고독했어요. 그 당시 사택의 부유함, 바깥세상 사람들의 허덕이는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었죠. 저로선 물질적으론 편하지만 참 외로웠던 시절이예요."

조부모와 산 건 부모의 부재 때문이었다. 서울대 공대생이던 아버지는 미국으로 유학 간 뒤 실종됐고 한대수가 17살 때 백인 여성과 재혼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 또한 재가했다.

고 1때 아버지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건너가 2년 반가량 살던 시절의 외로움이 스민 곡이 1집의 '바람과 나'다.

그는 "거기서도 난 혼자였고 2층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며 "참 외롭던 때 영국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인 퍼시 비시 셸리의 '서풍의 송가'를 읽고 감명받아 노래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대표곡이 담긴 1·2집이 1970년대 유신시대에 체제 전복 음악이라며 금지되고, 세계 평화와 사회·시대의 아픔에 시선을 둔 음악에 가려졌지만 그는 사랑과 이별 노래도 꽤 많이 만들고 불렀다.

1966년 뉴햄프셔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 학교에 다닌 그는 1968년 미국에서 귀국해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무대를 밟았다.

그는 1집의 '사랑인지?'에 대해 "쎄시봉에서 MC를 하던 TBC 이백천 PD의 소개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했다"며 "1969년 어느 날 녹화를 마치고 나오는데 TBC 건물에서 2살 연상의 한 여성 탤런트가 '음악을 잘 들었다'고 하더라. 함께 냉면을 먹었고 집을 오가다 보니 사랑에 빠졌다. 어린 마음에 '이게 사랑인가?'란 생각에 쓴 곡"이라고 웃었다.

1집의 대표곡 '물 좀 주소'도 이 탤런트와 연관이 있는 노래다.

"재가한 어머니가 마련해준 명륜동 집에 살 때였는데 가정부가 어머니에게 '오빠 집에 여자가 자주 온다'고 고했죠.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저를 그 집에서 쫓아냈어요. 여자 문제뿐 아니라 머리도 기르고 TV 나가서 노래하는 게 마뜩찮았는데 건수가 잡힌 거죠. 이후 성균관대 뒤 달동네로 갔는데 이때 사랑의 결핍, 사회와 나의 부딪힘에 대한 노래인 '물 좀 주소'를 만들었죠. 이 곡은 저의 의도보다 정치적으로 해석된 경향이 있어요."

사랑 노래는 더 있다. 그는 1974년 군에서 제대하고 1집을 발매하던 해 첫 아내와 결혼했지만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인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 씨와 재혼했다.

1999년 7집에 수록한 '투 옥사나'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쓴 곡이다.

그는 "마누라를 처음 만났을 때 완벽한 몸매에 빠졌다"며 "'이렇게 조각 같은 여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옥사나에게 프러포즈할 때 '아이 러브 유'(사랑해)가 아니라 '아이 니드 유'(네가 필요해)라고 절실하게 고백했다"고 '껄껄' 웃었다.

'그대'란 곡에는 헤어진 첫 아내로 인해 가슴 아팠던 사연이 담겼다.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떠나보냈는데 또 한 번 사랑에 실패했다는 얘길 들었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쓴 곡입니다. 여러 이혼과 헤어짐이 있지만 모두 더욱더 행복하게 살아줄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책에는 알코올 의존증인 옥사나가 입원한 병원에서 한 할머니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방가르드 랩처럼 만든 '지렁이', 호치민 평전을 읽고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아 록 비트에 내레이션을 하고 강렬한 기타를 더해 만든 '호치민' 등 곡이 잉태된 얘기들이 구구절절하다.







책 출간 뒤에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한 40주년 앨범 '리버스/리버쓰'(Reverse/Rebirth)가 나오고, 4월 25~26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연다.

5월에는 그가 출연한 독립영화 '유공자'가 개봉될 예정이다. 그는 도태된 국회의원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따로 있고 전 성상납도 받고 돈도 받는 부패한 국회의원으로 출연해요. '모노폴리'에 이어 두번째 영화 출연으로 3월에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 양호를 키우면서 일련의 작업을 하는 과정이 무척 힘에 부쳤다고 털어놓았다. 그간 이렇다 할 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것도 예순에 양호를 얻고 자신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양호 외에는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전 완전히 딴 사람이 됐죠. 애가 움직일 때마다 화폐가 드니 돈을 벌어야 했어요.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자본주의가 무섭다고 느꼈죠. 한국에서 록음악의 팬 베이스가 0.1%도 안되니 록을 해봤자 뭐가 들어오겠어요. 라디오를 하며 일하기 시작했죠. 하하."

이뿐만 아니라 그는 부인 대신 집에서 요리도 직접 한다. '삼시 세 끼'의 차승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매끼 세 가지 음식을 만든다.

"오후 4시에 학교에서 아이를 데려온 뒤 요리를 합니다. 마누라가 전혀 못해요. 한 끼에 세 가지 메뉴를 만드는데 양호, 아내, 저를 위한 음식이죠."

그는 "다시 돌아보니 인생이 너무 비극이어서 웃음으로 털어버리려 한다. 그래야 계속 해낼 수 있다"며 "아, 이제 양호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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