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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tled (19730708), 2014, newspaper, ballpoint pen, pencil, 39x54x1cm <아라리오갤러리 사진 제공> |
신문을 지우며 마음을 비우다…최병소 개인전
아라리오갤러리서 5일부터 4월26일까지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나는 몸으로 그린다. 눈이나 머리, 가슴보다 몸으로 그리는 것이 적성에 맞기 때문이다. 신문지에 연필과 볼펜을 긋다 보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 모든 게 부질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것이 좋다. 그게 바로 나다."
서울 종로 북촌에 있는 아라리오갤러리에서 5일부터 4월26일까지 작가 최병소(72)의 개인전이 열린다.
전시 공간에는 개성적인 작품들이 걸려있다. 신문에 연필이나 볼펜을 반복적으로 그어 그 활자와 여백을 아예 덮어버렸다. 때로는 바탕이 신문지였는지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작품활동은 1943년생 작가가 겪은 한국전쟁의 경험과 연관이 있다. 당시에는 교과서 출판도 열악한 상황이어서 정부는 신문용지에 내용을 인쇄해 배포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집에서 이것을 제본해 사용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 이렇게 한 학기 동안 '신문지 교과서'를 사용한 작가는 이것이 해어질 때까지 주머니에 놓고 다녔다.
접고 펼치기를 자주 하면 신문지는 닳아 찢겨진다. 전시작품들도 군데군데 찢겨 있다.
굳이 비교하면 신문지는 캔버스가 되고 연필과 볼펜 같은 필기구가 작가의 또다른 표현수단이 된 셈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다시 고향 대구로 향한 작가는 1975년 우연히 노점상에서 불교 경전 중 하나인 천수다라니경 LP판을 구입했다.
전시를 앞두고 4일 만난 작가는 "친할머니와 닮아 보인 노점상으로부터 산 그 LP판을 들으며 볼펜과 연필로 무심히 신문을 '지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불교 경전도 수행을 하기 위한 것이니 반복적으로 긋는 행위도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수행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작가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군부독재 시절 사회현실에 저항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관람객들은 그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자신은 "일간지가 매일 쌓이고 책상 위에는 필기구가 있으니까 그야말로 그냥 칠한 것"이라고 진솔하게 설명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포탄이 떨어지고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작가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도 제 작품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워나가는 작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10여 년간 작업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작품활동을 하다가 1990년대에 다시 신문지 작업을 하게 됐다.
초기에는 신문 한 면만 지웠지만 1990년대에는 양면을 지워버렸으며 2000년대 들어선 자신이 원하는 길이만큼의 긴 신문용지를 지웠다. 대형작품은 그 길이가 15m에 이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문지를 쓰니 비용이 안 들고, 전시공간에도 핀으로 작품을 고정하니 액자도 필요없다"고 바라봤다.
그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어두운 남색 계통의 옷차림은 작가가 주재료로 삼은 신문지 그리고 그가 지우기를 반복한 작품과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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