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소극장 23년만에 공연장으로 재개관
1981년 김구림·조정권 퍼포먼스 재연…매월 기획공연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서울 종로 원서동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1층에 있는 '공간 소극장'이 4일 문을 열었다.
지난해 9월 공간사옥을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 이곳에선 최근까지 프랑스 미술작가 피에르 위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는데, 6개월여 만에 정기 공연을 하는 소극장으로 재개관한 것이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은 사옥을 훼손하지 않을 것 등의 조건으로 2013년 11월 김창일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에게 매각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 따르면 이곳은 1977년 소극장 '공간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1992년 유진규의 마임 공연까지 정기적으로 수많은 공연이 올려졌던 공간이었다.
100석 규모의 공간사랑에선 '전통예술의 밤'을 통해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로 구성된 사물놀이 공연이 이뤄졌고 생전에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시작되는 등 15년간 4천180여차례 공연이 열려 문화예술인의 사랑을 받았다.
1981년 5월27일에는 미술인과 시인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주인공은 당시 캔버스를 벗어나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던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김구림(79)과 그와 우정을 나눈 조정권(66) 시인이었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으로 당시 관심을 모았던 이 퍼포먼스에 대해 당사자 중 한 명인 김구림은 실험이 아니라 완벽한 작품이라며 제16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하기도 했다.
첫 무대로부터 34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2015년 두 주인공이 다시 무대에 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으로 사람들이 들어오자 무대 안쪽에서 준비하던 두 주인공은 머리카락을 매만지거나 물을 마시며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공연 관계자와 일반인, 언론인 등으로 가득 찬 60여석의 객석에 조명이 꺼지자 무대에 불이 켜지고 시인이 등장했다.
무대에 선 그가 몇 분간 시를 낭송하듯 웅얼거리자 백발의 꽁지 머리를 한 김 화백이 무대에 등장해 앉아 손톱을 깎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그 소리를 들려줬다. 두 사람은 때로는 눈빛으로 교감했다.
다소 새롭고 조금은 어색한 듯 10여 분간의 퍼포먼스를 끝낸 이들은 무대 인사를 마무리하고 소감을 밝혔다.
"김구림 선생의 제안으로 그때 이 퍼포먼스를 했죠. 저는 아무런 의미 없이 중얼대는 '음성 시(詩)'로 단절음을 내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참 쑥스러웠어요. 오늘 그때를 회상하며 해 봤는데 여전히 어설프네요."(조정권)
"옛 중국 상류층이 손톱을 길게 길렀는데 그것은 권위의 상징이었어요. 손톱 깎는 소리는 무념과 무상의 세계로 인도하죠. 잡념을 잊어버리게 하는…. 그땐 극장이 크게 느껴졌는데 오늘 보니 작네요."(김구림)
조 시인은 "이 공간에선 과거에 매주 전통무용과 현대무용, 타악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열렸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그만 움직임이 이 공간을 살아나게 하는 불씨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의미를 뒀다.
시인은 "아마도 그때 공연이 잘 됐더라면 반(反)정부적이라며 잡혀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화백은 "조 시인은 싫다지만 다음 달 광주에서 공연하는 또 다른 퍼포먼스에 시인이 필요해 억지로 끌고 가려 한다"고 말해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앞으로 이곳에선 기획공연 시리즈인 '마스터스 스테이지'(Master's Stage)가 이어진다.
한국 문화예술의 다양한 장르에서 한 획을 그은 마스터를 초청해 그의 예술을 느끼는 자리로, 프리뮤직을 하는 강태환의 색소폰 연주와 해금 등 전통악기를 결합한 무대, 유진규의 마임 공연을 보여줄 예정이다.
판소리 명창 배일동과 드럼연주자, 트럼펫 주자 등과의 야외 음악무대도 열 계획이다.
이날 객석에 자리를 함께한 김창일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은 "주변에서 이 공간에 대한 향수가 많아 빨리 문을 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체임버 오케스트라, 퍼포먼스 등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중"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시대에 맞는 아방가르드 공연, 현대적 공연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