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울산중구 삼일사당 (울산=연합뉴스) 울산 병영3.1만세운동으로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26명의 애국지사 위패가 모셔진 울산 중구 동동의 삼일사당. 사진 원 안은 아직 후손이 나타나지 않은 최원득 애국지사의 위패. 2015.2.27 << 울산중구 제공 >> canto@yna.co.kr |
"최원득 독립유공자 후손 찾습니다"<울산 중구>
병영 만세운동 유공자 인정…훈포장 전달 못해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울산 병영 독립만세운동 유공자 최원득(1900∼1930) 지사의 후손을 찾습니다."
울산시 중구와 병영삼일사봉제회가 병영 만세운동에 참여한 최 지사의 후손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병영 만세운동은 1919년 서울의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지역 청년들이 그해 4월 4일 오전 9시 울산시 중구 병영동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서 유지, 주민, 학생 등이 축구경기를 위장해 모인 후 시축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경수비대에 의해 김응룡, 문성초, 엄준, 주사문 등 4명의 지사가 순국했다. 또 최원득, 권석운 지사 등 태형을 받거나 옥살이를 한 인사는 22명에 달했다.
이들 26명은 모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그 후손에게 각종 훈포장이 전달됐지만, 최 지사의 후손을 아직 찾지 못해 대통령표창이 국가보훈처에 보관돼 있다.
후손을 찾지 못한 병영 독립유공자는 최 지사 외에도 엄준 열사가 있지만 병영삼일봉제회의 기록을 보면 엄 열사에겐 당시 부모와 처자가 없었다고 돼 있어 사실상 최 지사가 유일하게 유족을 찾지 못한 셈이다.
최 지사의 아호는 송제(松齊)고 본관이 경주이며, 1900년 12월 11일 태어나 1930년 2월 4일 숨진 것으로 병영3.1독립운동사에 기록돼 있다.
당시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환 병영삼일사봉제회 회장은 "최 지사는 2005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됐는데 10년 넘게 자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구청의 협조를 얻어 등본을 뒤지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대부분 작고해 후손을 찾을 길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중구는 1987년 동동에 삼일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