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인준을 여론조사로 하자는 황당한 발상
(서울=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를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맡기자고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했다. 참으로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발상이다. 헌법은 분명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여야가 합의를 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표결을 통해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부여된 이 정치적 결정권을 스스로 포기한 채 여론조사로 총리를 결정하겠다는 깜짝 제안을 하고 나서다니, 어떻게 이런 편의주의적이고 초헌법적인 생각을 할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논란이 되는 모든 고위공직자 인준은 여론조사를 통해 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국민의 48% 지지를 얻었던 전 대통령 후보, 그리고 현 제1야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그의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여론조사는 만능이 돼 버렸다. 각 정당이 당내 선거나 총선, 지방선거 후보 결정과정에서 경선 룰의 일부로 여론조사를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이제 일반적 행태가 됐다. 심지어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 같은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 여론조사가 동원되고 있다. 극소수 표본의 생각에서 거대한 모집단의 생각을 유추해 내는 여론조사는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표본확보의 어려움, 낮은 응답률, 조사 시기마다 다른 결과 등으로 인해 정밀성이 떨어지는 불확실한 기술인 것도 사실이다. 완벽하지도 않고 그 결과가 여론을 대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여론조사를 결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여론조사는 단지 참고자료일 뿐이다. 그런데 이를 마치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냥 힘든 문제에 봉착하면 여론조사에 기대려는 정치인들의 생각은 '정치적 편의주의'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풀어야 한다. 숙의를 거쳐 대화와 타협,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하라고 국민의 혈세로 고액의 세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제안을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청문회를 전후해 드러난 이 후보자의 병역, 부동산 투기 의혹은 물론이고, 그의 언론외압 발언은 이 후보자가 과연 총리로서 적합하냐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야당 입장에서는 안대희, 문창극에 이어 이완구 후보자 마저 낙마시키게 되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문 대표는 이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 "호남인사를발탁했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고 곧바로 "충청분들께 서운함을 드렸다면 송구스럽다"고 사과까지 한 터라 충청출신인 이 후보자 인준 문제에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표는 이 사안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원내 문제이니 원내대표에게 일임한다'고 하면 공당의 대표로서 정치적 현안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받을지언정 지금과 같이 황당한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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