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제일 힘들게 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KBS1 '그대가 꽃' MC 인순이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인생은 드라마'라는 말에 가장 들어맞는 삶을 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가수 인순이(58)다.
그는 지난 1957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사실상 없다. 당시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외모에서부터 혼혈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인순이에 대한 시선이 고왔을 리 만무하다.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 잡았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처럼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여성 가수는 드물다.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다"고 외치는 노래 '거위의 꿈'을 인순이가 불렀기에 더 울림이 있었듯이 KBS 1TV '그대가 꽃' 또한 그렇게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인순이가 진행하는 것이기에 시청자가 공감할 공간이 더 커진다.
지난달 5일부터 매주 월요일 방송되는 '그대가 꽃'은 '누구의 인생에나 드라마는 있다'는 주제로 다양한 이들의 삶을 이야기해보는 토크드라마다.
인순이와 요리사 신효섭 씨가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출연자의 추억이 얽힌 밥 한 끼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인순이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제가 제일 힘든 삶을 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보다 힘든 일을 겪어내면서도 용감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청자들에게 치유되는 느낌을 전하기 전에 제가 먼저 치유되고 있어요."
인순이는 "출연자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겪었거나, 공감 가는 일이 많다"면서 "이야기가 하나씩 던져질 때마다 제가 겪은 일들도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인순이는 미리 관련 자료를 받고 촬영 현장에 일찌감치 도착해 출연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출연자와 제작진의 사전 미팅에도 참여하려고 할 정도로 열성을 보인다는 것이 제작진의 전언이다.
이에 인순이는 "제 인생도 버거운데 남의 인생도 공부하려니 힘들기는 하다"면서 활짝 웃었다.
배석한 김민희 PD는 "인순이씨가 섭외차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도 인생이 너무 힘들 때 밥 한 끼 해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에 그것으로 (MC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인순이는 만약 MC가 아닌 출연자로 등장할 경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느냐는 질문에 잠깐 망설이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살면서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겪을 일을 경험한 것 같아요. 제작진이 방송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제안했는데 제가 못 하겠다고 했어요. '아버지'라는 노래를 내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한 적이 있지만, 더이상 (가족에 관해)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기운이 없어요. 어느 날 제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보약이라도 먹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술은 못하니깐요."
"술과 담배를 배우면 거기에 너무 깊이 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일절 안 했다"는 인순이의 이어진 말에서는 열심히 버텼을 그의 인생이 다시금 느껴졌다.
인순이는 '추억의 음식'을 꼽아달라는 주문에는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가 젓갈을 잔뜩 넣고 만들었던 고구마줄기 김치를 언급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먹을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순이는 이날 "이름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고 이겨내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방송에는 난치병을 극복하고 가정을 이룬 현경석·번영진 부부, 교도소 복역 경험을 바탕으로 '7번방의 선물'을 쓴 시나리오 작가 김황성,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사랑으로 바꾼 소설가 소재원 등이 출연했다.
오는 16일과 23일에는 국내 최고령 MC 송해의 '오마이, 나의 오마이' 편이, 다음달에는 해적들에게 피랍됐다가 살아난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과 가수 윤항기, 한국 코미디계 대부인 구봉서 편 등이 방송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6회가 방송된 가운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은 8.8%이며 껌팔이 고아 출신 성악가 최성봉 씨 편은 최고 기록인 11.5%로 집계됐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입되는 회상 장면에 출연 의사를 밝히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김 PD는 "요즘 종편에서 많이 나오는 재연드라마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제작진은 확신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운명적인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을 포인트로 잡은데다 실화 기반 드라마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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