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2일 게임중독 아버지의 감금·학대에 시달리다 탈출한 딸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연수구 한 빌라의 가스배관. 2015.12.23 오장환 기자 ohzzang@focus.kr |
[부자동네타임즈 이영진 기자]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아빠’가 11살 소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인천 연수구의 한 빌라 2층, 노끈으로 손이 묶인 채 세탁실에 감금돼 있던 A(11)양은 스스로 노끈을 풀고 좁은 창문을 통해 가스배관을 타고 지난 12일 오전 세상으로 나왔다.
A양은 인천으로 이사 온 지난 2013년 7월부터 그의 ‘친아빠’ B(32)씨와 그의 동거녀 C(35)씨, 동거녀의 친구 D(36·여)씨 등 3명에게 감금돼 손과 발, 옷걸이,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을 당하던 상태였다.
8년 전 이혼하고 6년 전부터 C씨와 동거를 시작한 B씨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빠져 A양을 방치했다.
B씨가 A양을 방치한 사이 C씨는 A양에 대한 폭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와 C씨가 인천으로 이사 올 당시 빌라 보증금을 보태고 같이 살게 된 D씨 또한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B씨 등이 식사를 주지 않아 일주일까지도 굶은 경험이 있는 몸무게 16㎏의 소녀가 세상 빛을 보자마자 달려간 곳은 동네에 있는 슈퍼였다.
슈퍼에 도착한 소녀는 과자 몇 개를 집어 들고 구석진 곳으로 갔다. 빌라 2층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소녀였지만 과자봉지를 뜯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
지난 12일 게임중독 아버지의 감금·학대에 시달리다 탈출한 딸이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영상 캡처. <사진출처=인천 연수경찰서> |
슈퍼 주인 김진식(42)씨는 겨울날 맨발로 슈퍼에 들어오는 A양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A양에게 빵과 우유를 주고 경찰에 신고했다.
A양이 탈출을 감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첫 번째 탈출에서 A양은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A양은 출동한 경찰에게 고아원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A양에 대한 아동학대 사실을 최초로 신고한 슈퍼 주인 김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김씨는 “12일 오전 10시 50분쯤으로 기억한다”며 “한 아이가 맨발로 들어와 과자를 몇 개 골라 구석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그럴 때 혼내야 할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며 “이 아이는 딱 봐도 이상해 빵과 우유를 주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또 “동네에서 슈퍼를 하다 보니 동네 사람 대부분을 알고 있다”며 “그런데 이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였다”고 밝혔다.
A양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주민들은 B씨 등이 키우던 애완견에 대해서는 알아도 A양에 대해 알지 못했다.
A양이 살던 빌라의 한 주민은 “A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C씨로부터 아이를 장애인 센터에 맡겨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같은 빌라에 사는 또 다른 주민도 “작은 개를 키우고 있어 개와 어른 셋이 사는 줄로만 알았다”며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같이 살아 누나들이 남동생을 데리고 사는 친남매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B씨 등의 이름도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아동학대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빌라에서 월세를 받았다던 한 주민은 “2년전쯤 이 빌라로 이사와 한 번도 월세를 내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다”며 “월세를 내러 오던 C씨는 키가 크고 늘씬하며 예쁜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또 “C씨는 말수도 없고 목소리도 작았다”며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사람들이 그럴 줄 어떻게 알았어”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빌라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한 주민은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가 가만 있었겠느냐”며 “지나가다 계단 등에서 C씨를 마주치면 우리 애들에게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곤 했는데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집에 떡, 과일 등을 몇 번 가져다 준 적이 있는데 전혀 알지 못했다”며 “조용하게 지내는 집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얼마 전 기자들이 왔을 때도 기자들에게 잘못 알고 온 것 같다고 이 집이 아닌 것 같으니 다시 알아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 |
지난 12일 게임중독 아버지의 감금·학대에 시달리다 탈출한 딸이 빌라에서 가장 먼저 슈퍼로 달려간 연결도로. 2015.12.23 박요돈 기자 smarf0417@focus.co.kr |
B씨 등은 A양이 탈출한 것을 알고 그날 도주했지만 나흘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조사에서 B씨는 “A양이 아무거나 주워 먹어 훈육 차원에서 때린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며 A양에 대한 학대 혐의를 동거녀 C씨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이내 “죄송하다”며 혐의를 인정하고 범행을 자백했다.
A양은 B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장화영 관장은 22일 브리핑에서 “아빠가 처벌받기를 원하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며 “아버지가 처벌받기를 원한다고 또렷하게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A양은 회복 중에 있지만 안정이 필요한 상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브리핑에서 “초기 발견 당시 A양은 영양부족에 의한 빈혈과 간염이 있었고 폭행 때문에 생긴 늑골 골절과 온몸에 타박상도 발견됐다”며 “또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과잉 불안장애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A양은 현재 빈혈과 감염 수치가 정상범위 이상으로 점차 회복 중에 있으나 정상수치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골절된 갈비뼈는 안정적으로 붙어 회복 중이고 각종 영양제를 처방해 영양회복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4㎏ 정도 체중이 증가했고 타박상이나 염좌는 대체로 회복됐다”며 “굉장히 밝고 말을 잘하며 자기의사 표현이 뚜렷하고 또래와도 잘 어울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A양이 음식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고 전했다.
또 “아버지의 폭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정신적 치료를 오래해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
새누리당 신의진 대변인. 2015.08.18 박동욱 기자 fufus@focus.kr |
A양이 입원해 있는 인천 연수구 나사렛국제병원을 방문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신체적인 회복을 위해 2차적으로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며 “예상한대로 모든 것이 걱정되며 특히 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 말려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또 “정부의 대응이 갑갑하다”며 “학대 피해아동은 특화된 치료가 필요하고 주변 환경을 바꿔줘야 하는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문성이 중요해 전국에 거점기관을 만들고 중앙에서 컨트롤해야 하는데 동등하게 전국에 설치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23일에서야 초등학교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정부 합동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A양이 감금·폭행 등 학대를 받는 동안 학교에 오랫동안 결석했음에도 조치가 미흡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A양을 가정에서 사랑받는 생활을 느낄 수 있도록 쉼터나 시설보다는 위탁가정에 장기 위탁할 계획이다.
이후 A양의 아버지 친권문제가 해결되면 최종거처를 정할 방침이다.
‘매정한 아빠’를 둔 A양에 대한 세상의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홀트아동복지재단은 A양을 돕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 중이다.
홀트아동복지재단은 “23일 오후 기준으로 2000여만원이 모였다”며 “기부금은 현재 A양의 식비와 치료비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홀트아동복지재단은 기부금을 계속 모집 중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 세부계획을 세우고 있다.
![]() |
인천 연수경찰서 2015.12.23 박요돈 기자 smarf0417@focus.co.kr |
한편 경찰은 24일 오전 A양을 감금·상습 폭행한 혐의(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상습 상해·감금·학대치상, 아동복지법상 교육적방임)로 구속된 B씨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친부 B씨는 검찰에 송치되기 전 기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또 동거녀 C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동거녀의 친구 D씨도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