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3중고' 소방관…벌집제거·동물구조·황당신고와 전쟁
폭염에 보호장비 "10분만에 속옷 다 젖어"<br />
황당신고 대응하느라 진짜 위급상황 못가<br />
동물보호는 구청 담당…법과 현실 괴리 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8-02 10:44:23
(서울=포커스뉴스) "보호복을 입고 10분만 지나면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죠"
서울 서대문소방서 강민찬(32·소방사) 대원은 지난달 11일 벌집 제거 출동을 나갔을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한 건물의 4층 벽면 처마 끝, 어마어마한 수의 말벌이 몰려있는 벌집을 살짝 건드리자 성난 벌떼가 강 대원의 몸을 마구 쏘아댔다.
오전 9시35분 출동지령을 받은지 90여분 만에 간신히 작업을 완수했다. 이날은 운 좋게 바로 귀소할 수 있었지만 벌집 제거 출동을 나갔다가 몸을 씻을 겨를도 없이 곧장 다음 출동을 나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 폭염에 보호장비로 무장…"착용 10분 만에 속옷 다 젖어"
연일 기온 30~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뭐든 해내는 '만능' 소방관들이 땀을 비오듯, 아니 폭포수인듯 쏟고 있다. 특히 대원들의 구조활동에서 인명구조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벌집제거, 동물구조 등이다. 이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만큼 고되고 위험하다.
여름이 되면 벌집 제거 신고가 폭증한다. 봄이 달콤한 '꿀벌의 계절'이라면 요즘 같은 여름철엔 말벌·땅벌·쌍살벌 등 말벌류가 기승을 부린다. 말벌집 제거가 꿀벌집 제거보다 당연히 더 위험하다. 체질에 따라 과민성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은 말벌에 한 방만 맞아도 바로 쇼크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지난해 9월엔 경남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 소속 소방관 이모(47)씨는 벌집 제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눈, 손, 발 등의 부위에 말벌의 공격을 받고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같은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대원들은 기본적으로 보호 장비를 착용한다. 벌침이 뚫지 못하도록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일체형 보호복으로, 안면 부분만 망사로 구성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다.
민소매 옷차림으로 가만히 서 있어도 불쾌지수가 치솟는 여름날, 소방대원들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보호복을 싸매고 벌집과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인다.
◆ 사계절 내내 하는 동물구조도 더위 만나면 '극한직업'
평소 같으면 크게 힘들지 않은 동물 구조 업무도 '더위'라는 특수 상황과 더해지면 '극한직업'이 된다.
지난 7월26일 서울 서대문소방서 대원들은 고양이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연희동 안산과 가정집 옹벽 사이 30㎝ 공간 3m 깊이에 고양이가 갇힌 상황이었다.
장소가 비좁아 구조활동이 여의치 못한 데다가 폭염까지 겹쳐 꽤나 애를 먹었다. 30~32도에 육박하는 여름철 같은 경우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에너지 소비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더운 날씨만큼 탈수 현상도 빨리 온다. 출동지령을 받고 구조 완료하는 데 한 시간여가 걸렸다.
권영철 서대문소방서 구조대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고양이 구조는 여름철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많다. 문제는 봄·가을·겨울엔 체력소모가 덜하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동물구조의 경우 소방대원들의 손길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단순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찾아달라고 신고한다거나 장마철 고양이가 차 밑에서 비를 피하는데 그걸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해 구조해달라는 경우가 그렇다.
한 소방대원은 "몸이 힘들더라도 필요한 구조업무를 수행하면 뿌듯하다. 다만 장마철 고양이가 차 밑에서 비를 피하는 것처럼 전혀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구조하러 가는 경우엔 기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전체 동물구조 요청에서 불필요한 요청 비율이 3분의 2는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마포소방서는 이와 관련해 "최근 마포구 주택가 일대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한 조치요청과 신고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유기견 신고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 "개미 잡아달라"…황당신고에 진짜 위급 상황 못 가
여름철 119 신고 중엔 황당 신고 사례도 많다.
마포소방서의 소방대원 A씨는 "한 번은 벌집 제거 신고를 받고 출동했더니 키 180㎝ 장정 남성이 집 처마에 달린 손가락 크기의 벌집을 치워달라고 신고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가정집 천장에 개미떼를 죽여달라고 하는 등 원래는 생활환경위생기업에서 해야 할 일까지 떠맡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옆에서 동료의 이야기를 듣던 소방대원 B씨도 "동물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하면 단순 유기견인 경우가 무수히 많다. 신고자에게 어떤 점이 문제냐고 묻자 "강아지가 나를 애처롭게 쳐다봤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거품 물고 쓰러져 있는 고양이를 인공호흡해달라고 하는 시민도 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외에 벌집 제거 요청으로 아파트 세대 내에 출동해보니 말벌집이 아니고 일반 벌집인 데다 벌집에 벌은 없고 비어있는 상태로 방치된 황당한 사례도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위급하지 않은 동물 신고로 진짜 긴급 상황을 못 가는 경우다.
서대문 소방서는 지난 7월1일 오후 7시53분경 서대문구 연희로 아파트단지 내 고양이 안전조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고양이가 차 밑에 있었던 경우로 고양이나 사람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각, 서대문구 연희로 가좌로에서 화재신고가 발생했지만 서대문 소방대원들은 해당 출동 신고를 받지 못했고 인근 소방서에서 대신 출동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서대문 소방서 대원 C씨는 "동물출동 중 나가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챙기다 보니 인력이 비현실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인명 위협 없는 동물 보호'는 구청 담당…법과 현실 괴리 커
'인명 위협이 없는 동물 보호'는 엄연히 소방본부 담당 업무가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14조는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은 동물치료·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동물 보호 주체를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으로 명확히 했다.
또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3조는 구조·보호조치 제외 동물에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를 포함한다.
이를 근거로 지난 6월11일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서울시 시민건강국 동물보호과에 '길고양이 구조요청 민원응대 협조요청'을 보냈다.
이로 인해 6월12일부터 길고양이 구조신고는 119(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120(다산콜센터)과 자치구로 이전돼 신고가 119로 들어와도 120과 자치구로 안내된다. 길고양이 구조·보호 역시 119구조·생활안전대에서 관할자치구 및 동물보호센터로 이전돼 이전에 소방서가 포획·구조했던 것을 관할 자치구 및 동물보호센터가 출동해 구조·보호 조처를 취하고 중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앞서 지난해 3월에도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서울시는 동물구조 역할분담에 관한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소방서에서 구조·포획한 유기동물을 관할 자치구에서 인수하고 소방서는 야생화된 유기견 및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중·대형동물 포획 시 협조하도록 지정해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선 소방대원들은 법령과 현실은 별개라고 입을 모은다. 원칙적으로 '인명위협이 없는 동물보호'가 소방관 담당 업무가 아니지만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소방대원 D씨는 "현실적으로 동물구조 신고를 다산콜센터로 넘길 수 없다. 일단 시민들은 119가 다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산콜로 연결하면 불만을 호소한다. 시민들이 구청에 전화해도 담당자가 없고 동물구조협회는 연락이 안 된다고 토로하는 사례도 있다. 구청에 동물구조를 인계해도 장비와 인력이 없다면서 다시 소방서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시민들에게 "법이 이렇게 돼 있다"고 설명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법 이야기를 하냐는 식이다.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기분 좋게 일한 다음에 "사실 이런 경우는 소방서가 아닌 구청 담당 업무다"라고 이해시키는 정도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5년간 소방본부의 동물구조 건수는 1만685건에서 2만3889건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국민안전처가 매년 발간하는 '소방행정자료 및 통계'를 살펴보면 전국119생활안전대의 벌퇴치·벌집제거는 2009년 4만6476건에서 2014년 11만7534건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위해동물포획퇴치도 2011년 3만3872건에서 2014년 3만7731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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