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스펙쌓기는 '사치'…"당장 돈부터 벌어야 합니다"
역대 최고치 청년실업률에도 스펙쌓기 엄두 못내는 '흙수저 대학생'<br />
알바지옥에 사는 최강우씨 "정체성까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7-14 22:00:04
△ 20만 일자리중에 내자리는?
(서울=포커스뉴스) "아버지 제사라 집에 내려가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루 빠지거든요. 대신 금요일에 알바하는 친구가 사정이 있다고 해서 제가 대타 해주기로 했어요. 어찌 보면 다행이죠."
대학 입학 후 단 한 번도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다는 K대학교 4학년생 최강우(24)씨는 하루 일을 빠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9개월째 서울 성북구에 있는 D빵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 알바 외에 또 다른 알바를 하나 더 했었다고 한다.
그는 "그전에 일하던 곳에서 잘렸다. 그때 일주일이라도 조금 쉬고 싶었는데 (형편상) 그럴 수가 없었다"며 "운이 좋게 D빵집에서 알바 시간을 대폭 늘려줘 알바를 새로 구하지 않아도 됐다"고 말했다.
◆ 취업준비와 알바 병행… 몸보다 정신이 피로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여읜 그는 대학을 다니고자 경북 구미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후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충당하고 있다.
이런 최씨의 방학 중 하루의 절반 이상은 알바로 채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여름방학 동안 최씨의 평일 하루는 이렇다. 아침 8시부터 오후3시까지 알바, 이후에는 혼자 집 혹은 근처 카페에서 취업 관련 공부를 하는 게 그의 일과 전부다.
최씨의 주말은 더 팍팍하다. 그는 주말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11시간 내내 알바를 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나면 공부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 당연히 친구들을 만나본지도 오래다.
최씨는 "일 자체가 많이 힘들진 않은데 일찍부터 오랜 시간 일하기 때문에 너무 지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은 알바에만 전념하다보니 스펙을 쌓지 못해 취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스트레스를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알바를 안하고 공부를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알바를 안하고 취업준비만 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운데, 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싶기도 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최근 간절히 듣고 싶던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알바 시간 때문에 놓쳤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저는 광고기획 이 꿈인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더라. 신청하려고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시간이 안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학교에서 지원하는 취업 준비 프로그램 같은 것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참여하지 못한다"며 "알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것들은 자꾸 뒷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알바에 파묻혀 살다가 정체성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내가 취업준비를 하는 건지 돈을 버는건지 잘 모르겠다"며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알바지옥에 사는 '청년 가장'…학원비도 아까워
최씨는 최근 야심차게 토익 학원에 등록했지만 전체 기간의 3분의 1도 다니지 못한 채 그만뒀다. 다행히 수업의 3분의 2 이상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지불한 학원비에서도 3분의 2를 환불받을 수 있었다.
그는 "종일반을 안 듣고 오후 문제풀이반만 들었는데 종일반 오전 수업과 이어지는 방식이라 흐름조차 따라가지 못했다"며 "한달에 14만원이나 하는 학원비도 짐처럼 느껴져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책값, 토익시험 응시료만 하더라도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나에게 큰 부담"이라며 "토익을 한 번 보면 5만원쯤 한다. 지금까지 서너번 봤는데 솔직히 부담된다. 학원을 오가는 차비조차도 부담일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최씨가 취업준비와 알바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최씨는 "내가 가장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를 여읜 이후로 스스로 가장이라는 압박감을 가진다"면서 "다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는데 매번 알바가 걸림돌이 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과 누나의 학비를 모두 책임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가 저랑 누나 대학 보낸다고 고생하셨다"며 "알바 안하고 용돈 받았으면 하는 그런마음은 가지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알바를) 안할 수 있으면 당연히 안하겠죠"라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뭔가 하고 싶을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게 알바 스케쥴"이라며 "시간이 없지는 않으니까 노력하면 된다고들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어렵다. 나는 취업준비와 알바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존재인 것 같다"고 자신의 처지를 평가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알바'
최씨는 인터뷰 도중 여행계획에 대해 묻자 표정이 바로 굳었다.
최씨는 "얼마 전 친한 친구 5명이 여행을 갔는데 나만 가지 못했다. 이 역시 알바 때문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는 "말하면 (알바를) 뺄 수는 있다. 그런데 주말 11시간을 빼면 당장 7만원이 날라간다. 1박 2일이면 14만원이나 날라가는 셈인데, 그러면 다음달이 너무 힘들어진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여행도 가고 싶고 그런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제나 '알바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라며 "이런 내가 너무 짜증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내가 나한테 쓰는 돈이 너무 아깝다. 솔직히 혼자 먹으면 밥 한끼에 5천원 이상도 못쓰겠다"며 "공부할 때 어쩔 수 없이 카페를 가도 무조건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제일 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있지만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기도 했다.
최씨는 "나는 열심히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이루는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며 "솔직히 스스로 안일해지는 마음도 있다. 알바로 당장의 급한 생활비를 벌 수 있다보니 취업준비가 급하지 않다라는 생각도 들 때가 많다"고 복잡한 속내를 내보였다.
이어 "안일한 마음도 들고 조급한 마음도 들고 그야말로 딜레마 상태"라며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 게 차라리 좋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라도 해야 스스로 위안이 되고 압박감도 덜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최씨는 인터뷰 동안 들었던 많은 감정들을 모두 추스리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아직 나는 젊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버티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며 "더 열심히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 흙수저 대학생에게 스펙쌓기는 '사치'
알바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최씨처럼 흙수저 대학생에게 여름방학은 하나의 족쇄와 같다.
여행과 같은 휴식을 위한 시간은커녕 제대로 된 취업준비조차 하기 힘든 게 이들의 여름방학이다.
통계청이 지난 13일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10.3%로 조사됐다.
청년 실업률은 올해 들어 2월부터 매달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중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실업률은 이보다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이 지난달 발표한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는 지난해 8월 기준 청년 체감 실업자가 179만2000명에 달하고 청년 체감 실업률은 34.2%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 모두 많은 청년들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며 각종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학비와 생활비 마련에 여름방학을 모두 보내야 하는 흙수저 대학생에게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생동성시험, 철거용역 알바 등 두렵고 죄책감이 드는 알바를 용기내 하더라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대학 등록금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폭염 속에 모두가 꺼려하는 주차장 수신호 알바 등에 뛰어들어도 부족하기는 매한가지고 어느정도 돈을 벌더라도 그 다음달이 걱정돼 학원비조차 아까워지는 게 흙수저 대학생의 마음이다.
이기원 청년유니온 대학생팀장은 "취업준비와 일을 병행하는 청년들이 상당히 많고 대부분 자기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그런 경우다"며 "청년들의 취업준비 기간이 워낙 길어지다 보니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지원을 받아도 마냥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 것 등이 이에 대한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청년 수당 문제도 돈을 보장해주자라는 간단한 생각에서 나온 문제들은 아니다"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길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김기태 기자 2015.08.25 조숙빈 기자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 청년(15∼29세)실업률은 10.3%로 두달만에 두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은 전년동월대비 0.3%p 감소했으나 청년실업률은 6월을 기준으로 할 경우 통계 작성 시작 연도인 1999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2016.07.13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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