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호황' 에어컨 시장…목숨 걸고 일하는 수리·설치기사

'한 콜, 한 시간' 위험에 빠진 기사들<br />
여름철 하루 평균 8~10건, 과로·열사병에 노출 <br />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다치면 개인과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7-01 08:31:13

(서울=포커스뉴스) "한 시간에 한 번 콜이 박히는데 안전장치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 30일 오후 2시20분 경기도 포천의 한 초등학교. 에어컨 수리·설치기사 김진우(39‧가명)씨는 급식소 냉장고를 수리하고 있었다.

성수기여서 한창 바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김씨는 다소 여유로워 보였다. 심지어 오후 4시까지 작업을 마쳐야 했는데 15분이나 일찍 끝냈다.

그러나 이는 기자의 착각이었다. 속사정은 전혀 달랐다.

이날 김씨는 점심을 거르고 초등학교를 찾은 것이었다. 한 시간에 한 건을 처리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그는 "냉장고 컴프레서(압축기) 교체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며 "제 시간에 오면 한 시간 안에 마치지 못 해 점심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4시20분쯤 쉬지 않고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세탁기 수리를 요청한 가정집이었다. 김씨는 35분 만에 세탁기를 고쳐냈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그를 보고 집주인이 건넨 냉커피도 몇 초만에 비웠다.

차로 20분을 달려 오후 5시17분쯤 도착한 또다른 가정집은 김씨에게 에어컨 청소를 의뢰했다. 에어컨을 2~3번 훑어본 그는 에어컨을 분리해 30분 동안 필터 등을 청소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김씨는 다음 고객과의 약속시간 때문에 "지금 (오후 6시) 몇 분이냐"고 되물었다.

오후 6시10분 에어컨 청소를 마친 그는 오후 6시25분쯤 인근의 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서 며칠 전 에어컨을 철거한 고객을 만나 반환서류에 서명을 받았다. 몇 시간 동안 숨 돌릴 틈조차 없었지만 그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날 <포커스뉴스>가 동행한 김진우 씨의 오후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김씨는 기자에게 "요즘 같은 성수기에는 오후 9시까지도 일하는데 오늘은 그나마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 이른 폭염…기업은 '대박', 기사 안전은 '비상'


요즘 가전업계는 축제 분위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등으로 침체됐던 내수가 살아나면서 3년 만에 최대 호황이 예상된다.

그 중에서도 에어컨의 매출은 독보적이다. 이른 폭염과 맞물려 수요가 늘면서 사상 최대 판매량을 경신할 전망이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지난주(6월 20~26일)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집계됐다.

반면 에어컨 설치와 수리를 겸하는 엔지니어들은 울상이다. 더운 날씨와 급증한 건수에 치여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고도 발생했다.

수리기사 A(36)씨는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이다. 경기도 안양과 평택 지역을 맡고 있는 그는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지 에어컨 배달, 설치 문의가 5월 중순부터 폭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5월에는 4~5건, 많으면 5~6건이었는데 올해는 5~6건은 기본이었다"며 "성수기인 요즘에는 8~10건 정도 하고 있다. 14시간 정도 일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뜨겁고 습한 날씨도 A씨에겐 고문이다. A씨 회사는 영업지침상 반팔 셔츠와 덧입는 조끼, 긴 바지와 구두를 착용해야 한다. 지난해 A씨의 동료 2명은 열사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A씨는 "밖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작업 20~30분하고 나면 '줄줄' 정도가 아니라 '철철'난다"며 "TV에 나오는 극한직업 못지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기업 하청업체 에어컨기사 B(27)씨는 요즘 직업을 바꾸는 쪽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최근 한 달 간 일감 폭주로 인해 체력이 매우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B씨는 "하루에 10건 안팎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정말 빨리해서 건당 한 시간 만에 해결한다고 해도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몸을 쓰는 일이다보니 일은 일대로 힘들어 지치는데 밥까지 못 먹다보니 몸도 마음도 무너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 '위험천만' 실외기 작업…"안전규정 무용지물"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빌라에서 수리기사 진모(43)씨가 추락해 사망했다. 3층 베란다에서 몸을 거의 내놓고 작업하다 중심을 잃고 떨어진 것이다.

진씨의 낡은 가방 안에는 도시락이 들어있었다. 사고 시각은 오후 2시30분이었지만 도시락은 출근길 그의 아내가 챙겨준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다른 기사들처럼 진씨도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원청업체는 진씨의 과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밝혔다. 진씨가 헬멧과 추락방지장비 등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위임된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지급하고 추락방지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진씨의 회사 측은 안전모 등을 지급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을 본 동료 기사들은 "안전모와 추락방지장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에어컨 실외기가 위치한 곳 대부분이 작업발판과 추락방지장비 등을 설치할 만한 여건이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산업안전기준이 현장에서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건축물 설비기준, 주택건설기준 등을 재정비함으로써 수리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비단 에어컨기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봇대나 상가에서 수리도중 추락사하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고용노동부 등 당국에서 인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에어컨 수리기사 김진우(30·가명)씨의 작업차량 짐칸에 각종 자재와 장비들이 실려있다. 문장원 기자. ⓒ게티이미지/이매진스 에어컨 기사가 고층 건물 난간에서 실외기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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