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 성분 공포 '우레탄포비아'…연휴 맞은 시민들 시설 기피

체육시설, 산책길 등에 시공된 우레탄 피해다니는 시민들<br />
우레탄 공포 확산에 된서리 맞을까, 우레탄 시공업체 울상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6-05 16:47:33

(서울=포커스뉴스) "납이 나왔다고요? 몰랐어요.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5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만난 박모(27)씨는 일부 초·중·고등학교 운동장 우레탄트랙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크게 당황했다.

박씨는 하던 운동을 멈추고 얼른 짐을 챙겨 인근 계단으로 몸을 피하면서 평상시와 다르게 한적했던 이곳의 분위기를 이제서야 이해한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난 운동장 주위에 설치된 우레탄트랙으로부터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를 막거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대운동장에서 본관을 지나 후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만해광장에도 우레탄 소재 바닥의 농구장이 눈에 띄었다.

역시나 사람 한명 찾아보기 힘든 이곳은 우레탄 바닥이 군데군데 움푹 패어있거나 금이 간 곳이 많아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6살 딸과 함께 산책을 나온 박현식(36)씨는 "일부 학교운동장 우레탄트랙에서 납 성분 등이 검출됐다고 하던데 역시나 우레탄 바닥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며 "야외농구장은 물론 놀이터 등의 바닥도 우레탄으로 된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아이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재학생 이서영(24·여)씨도 "우레탄 바닥 관련 뉴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적다"며 "만해광장은 축제나 입학식 같은 학교 행사도 많이 열리고 인근 주민들도 가족 단위로 많이 놀러 오는 곳인데 몸에 좋지 않은 중금속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 더 걱정이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우레탄 바닥이 설치된 인천 부평구의 한 야외농구장도 사람 한 명 찾아보기 힘들었다.

평소 학생들이 패트병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와서 농구를 즐기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그나마 이곳에서 홀로 농구를 즐기던 김청호(13)군도 30분가량 지나자 농구공을 옆구리에 낀 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농구장을 벗어났다.

김군은 "다른 엄마들이 우레탄 바닥에서 농구하지 말라면서 친구들을 내보내주지 않았다"며 혼자서 농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전국 명소로 손꼽히는 일산 호수공원도 우레탄 바닥으로 된 산책로를 피해 가거나 뜨거운 햇빛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마냥 공원을 가득 메운 우레탄 냄새에 얼굴을 찌푸린 시민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시민 신정현(31·여)씨는 "시민들의 휴식공간 곳곳에 학교운동장처럼 유해한 납이 나올지도 모르는 우레탄이 여기저기 깔려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동안 운동은커녕 산책 삼아서라도 공원에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딱잘라 말했다.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온 정모(44)씨는 "온도가 높아서인지 우레탄 산책길에서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면서 "호수공원이나 육교 등에 깔린 우레탄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고 불안해 했다.

◆ 전국민에게 확산되는 납 검출 우레탄 공포

전국 초·중·고등학교 운동장 우레탄트랙에서 암을 유발하는 납 성분이 한국산업표준(KS)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공원 등 각종 시민휴식시설과 체육시설의 바닥 역시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곳이 많아 문제가 점차 전국민적인 납 공포로 확산되고 있다.

5일 서울시교육청 등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교육부의 전수조사 지침에 따라 학교운동장 우레탄트랙에 대한 유해성 검사를 진행 중이고 그 결과는 이달말 나올 예정이다.

현재까지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한 시·도교육청별로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검출된 우레탄트랙 보유 학교수를 살펴보면 서울시교육청 산하 51개교, 경기도교육청 산하 148개교, 인천시교육청 산하 32개교 등이다.


우레탄트랙은 고무탄성층 위에 우레탄 수지를 도포하는 방법으로 시공되고 이 과정에서 우레탄을 빨리 굳게 하려고 본드나 경화제 등이 사용돼 납 성분 등 각종 중금속 유해물질이 발생하게 된다.

이중 납 성분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뇌신경계 영향 등에 문제를 일으키고 만성적으로 노출될 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 중금속이다.

문제는 납이 함유된 우레탄이 학교운동장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 설치된 공원 등의 바닥재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먼지가 발생하지 않고 재질이 푹신해 부상 위험도가 낮다는 이유로 공원은 물론 농구장 등 시민 야외체육시설에 우레탄이 바닥재로 사용된 경우가 많아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우레탄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 된서리 맞은 우레탄 시공업체 '울상'

우레탄에 대한 우려가 공포로 번져가면서 우레탄 시공업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시공계약을 맺은 곳으로부터 안전에 대한 각종 문의전화가 오는 것은 물론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계약파기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기 수원에서 우레탄 시공업체를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우레탄의 독성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며 "대부분 우레탄에 납 성분이 다량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하고 친환경이라고 나와있는 제품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행히도 현재까지 우레탄 시공에 대한 수요가 줄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행여나 계약 수주 등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고 일부 업체 관계자들은 분위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상 방수 등을 위해 우레탄 시공을 고민하던 건물주 등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강서구의 A상가건물 소유주 김모(63)씨는 "이달 초 우레탄 소재로 옥상 방수 시공을 맡기려 했으나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망설이고 있다"며 "장마가 오기 전에 얼른 보수공사 및 시공을 마무리해야 해서 걱정이다"고 말했다.5일 주말을 맞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만해광장 농구장은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한 모습이다. 이곳은 우레탄으로 바닥이 마감돼 있다. 2016.06.05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5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육교 위에 우레탄 재질의 바닥재가 시공돼 있다. 이 길을 많은 시민들이 피해다녀 휴일 낮 임에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지난 3일 인천 갈월초등학교의 운동장 우레탄트랙이 개방 중지 조치된 상태에서 각종 안내문이 학생 및 시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2016.06.03 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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