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길렀다 비행재제 된 항공기장…법원 판결은?
'징계' 아닌 '업무명령'…법원 "회사 권리남용 아냐"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5-27 14:20:06
△ [삽화] 법원 ver.1
(서울=포커스뉴스) 19년 베테랑 운항승무원이자 국내 유수 항공사 항공기 기장인 A씨는 2014년 초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A씨는 외국인 승무원과 타사 승무원들도 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 개월 동안 고객의 항의를 받거나 운항업무에 차질을 빚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한 회사 간부는 A씨가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고 안전운항팀에 지적을 했다. 회사 간부의 이야기를 들은 안전운항 팀장 B씨는 "턱수염을 기르는 것은 회사 규정에 위배되니 면도를 하라"고 지시했다.
B씨는 항공사 내부 규정인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을 근거로 내세웠다.
임직원의 단정하고 청결한 용모를 강조한 회사 용모규정에는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수염을 길러서는 안 된다.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 직원은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 한다'고 돼 있었다.
A씨는 "외국인들은 수염을 기를 수 있는데 남직원들은 왜 안 되느냐. 이는 차별이다"며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행정지 처분이었다. B씨는 당일 예정된 김포-제주 비행 일정에서 A씨를 제외한 것이다.
A씨는 종교적‧개인적 신념으로 수염을 기른다고 설명했지만 B팀장은 "어떠한 종교의 어떤 교리가 적용되는지 설명해 달라"며 A씨를 독촉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A씨는 더 이상 대응하지 않았고 이후 약 한 달간 A씨의 비행업무가 변경되거나 정지됐다.
이후 턱수염을 밀고 회사와 면담에 나선 A씨는 "규정이 개정되기를 희망한다. 규정이 변경될 때 까지 현 규정을 지켜 수염을 기르지 않겠다"고 말한 뒤 업무에 복귀됐다.
그러나 A씨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결국 같은 해 12월 "부당한 인사처분을 당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아시아나의 용모 규정이나 비행정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고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해 구제명령을 받아냈다.
당시 중노위는 "아시아나의 용모규정은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 유효성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용모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장을 비행임무에서 빼는 것은 무리한 인사재량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중노위의 재심판정 이후 항공사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항공사는 "사내 용모 규정에서 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직원들은 용모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면서 "단정한 복장과 용모를 유지하는 것은 근로자의 기본의무"라고 주장했다.
또 "운항승무원의 불량한 용모나 태도는 고객의 신뢰도 하락과 직결된다"며 "A씨는 항공기의 안전한 운항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기장으로서 규정을 더 강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A씨는 "운항승무원은 업무 수행과정에서 승객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며 "외국인이나 타사 운항승무원 상당수가 수염을 기르고 승객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되거나 징계가 이뤄진 적도 없다"고 맞섰다.
A씨는 또 "2006년 1월 신설된 용모규정은 남자 직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며 "신설된 규정은 노동조합과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는 한 항공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비행정지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항공사의 조치는 A씨의 현재 상태가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정하지 않다는 판단에 내려진 업무명령"이라며 "이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근거가 없더라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권리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항공사의 엄격한 용모복장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항공사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과 신뢰는 항공사 경영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항공사는 직원들의 복장이나 용모에 대해 일반 기업체보다 훨씬 폭 넓은 제한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과거 제복을 입고 출근하던 승무원들이 새치기를 해 일반 시민의 항의가 제기되는 등 제복을 입은 승원들의 모습이나 태도,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것 까지 고객 만족도나 신뢰도에 영향을 끼친다"면서 "수염을 기른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한 조치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기장의 사소한 심리상태도 비행업무 배당에 고려되는 점, A씨가 10년 가까이 규정을 준수하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이 참작됐다.2015.08.27 조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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