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황병서·박봉주·최룡해…北 정치국 상무위원 4인 면면

88세 고령 건재 과시 김영남…군부 서열 1위 황병서<br />
북한 경제 '실세' 박봉주…'2인자' 저력 과시 최룡해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5-10 11:41:30

△ 북한,김일성,김정일

(서울=포커스뉴스) 북한이 9일 36년 만의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를 폐막하며, 김정은 시대를 열어갈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5인을 구성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를 수위(首位)로 하는 당 중앙위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조직됐다"고 선언했다.

정치국 상무위는 기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김영남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에 박봉주 내각 총리, 최룡해 당비서가 추가됐다.

명실상부 북한의 최고 권력층인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88세 고령에도 건재 과시한 김영남

당초 고령(88세)으로 물갈이가 예상됐던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상무위원직을 유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 김정일-김정은 등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뒤 2-3세 권력 승계가 진행 중인 사이에 각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북한의 최고지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 국가장의위원회의 위원을 모두 맡았던 김영남 위원장의 '롱런 비결'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절대 충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美)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지냈던 돈 오버도퍼가 저술한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에는 "북한의 외교관이자 김일성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다가 남한으로 망명한 고영환은 김영남을 북한 관리의 전형이라고 얘기했다"며 "김일성이 벽을 가리키며 '저것은 문이다'라고 한다면 김영남은 그 말을 믿고 기어이 벽을 뚫고 나가려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엔 이런 농담도 있다. '김영남 그 사람은 지문이 하나도 없다. 하도 손을 비비며 3대에 걸쳐 아부를 하느라…" 등으로 김영남 위원장을 묘사하고 있다.

김영남 위원장은 북한을 대표하는 기구인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으로서 국내 문제보다 친선외교와 의전활동 등을 담당한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을 방문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일행을 영접하고 전송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 대표·남북해외 민족대회 준비위원회 북측 대표 등을 맡았다.

김영남 위원장은 1928년 2월4일 평양에서 태어난 김영남 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를 나와 1953년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외교학을 공부한 북한의 전형적인 엘리트다.

1956년 조선노동당 중앙위 국제부 과장을 시작으로 1960년에는 국제부 부부장으로 승진, 이후 1962년에 외무성 부상을 거쳐, 1972년에는 중앙위 국제부장을 맡게 된다.

이후 중앙위 정치국 위원·정무원 부총리를 거쳐 1989년에는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부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1998년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올라 2016년 5월 현재까지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군부 서열 1위 황병서…최룡해와 쌍벽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2015년 2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된 가운데 이번에도 그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는 2014년 상장에서 차수로 2계급 초고속승진을 하며 북한의 실세로 급부상했고 최룡해와 쌍벽을 이루는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군부 서열은 1위다.

황 국장은 인민군 총정치국 국장·인민군 차수·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뒷배는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라는 설이 있다. 고영희가 군부대를 현지지도할 때 황 국장이 그 보과관으로서 헌신적인 보필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에는 며칠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척수 수술 등 와병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내 모습을 비추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황 국장은 지난해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 이후 성사된 남북 고위급 회담에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함께 북한측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을 만나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따르면 그는 7차 당대회의 마지막날인 9일, 김정은 위원장의 조선노동당 위원장 추대에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한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 '실세' 박봉주…경제 분야 성과 김정은 의지

북한 경제의 '실세' 박봉주 내각 총리가 9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이번 정치국 상무위원에 박봉주 총리가 포함된 것은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1939년 4월10일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출생한 박봉주 내각 총리는 77세의 고령이다.

당초 36년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기도 했다. 그러나 88세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77세의 박봉주 내각 총리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구성되며 건재를 과시해 세대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다소 개혁적 성향의 인사로 분류되는 박봉주 내각 총리는 지난 2003년에서 2007년까지 내각 총리를 역임하며 시장경제의 요소를 일부 도입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하다 실각했다.

당시 박봉주 총리는 기업경영 자율화, 당의 사회적 노력동원 금지 등 파격적인 경제개혁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당의 이권을 둘러싸고 당 간부들과 마찰을 일으켜 실각, 이후 평안남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그러나 지난 2013년 4월 6년 만에 내각 총리로 복귀했다. 당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경공업 전선에 힘을 집중해 승리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박봉주 총리는 지난 2002년에는 경제시찰단의 이름으로 남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62년 평안북도 용천식료공장의 지배인을 시작으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당 책임비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등을 지낸 그는 1993년 당 경공업부 부부장, 1998년에는 화학공업상을 맡았다. 좌천 후 2010년 당 중앙위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돌아왔고, 2013년에는 다시 내각 총리로 재도약한 셈이다.

◆'2인자' 저력 과시 최룡해…빨치산 2세대

최룡해 비서는 지난해 지방 농장으로 좌천당해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1월 3개월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번에 다시 요직을 맡았다.

2013년 장성택 숙청 이후 최 비서는 2인자 또는 3인자로 손꼽혔으나 그를 둘러싼 숙청·실각설도 계속 제기돼왔다.

그러나 다시 권력의 정점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2인자로서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룡해 비서는 2012년 4월~2015년 2월에도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김일성의 최측근인 최현의 아들로 빨치산 2세다. 조선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인민군 총정치국 국장·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노동당 차수 등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김정은을 대신해 특사 자격으로 중국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2013년 김정은의 특사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핵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전한 것도 최 비서였다.

일각에서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차남이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과 결혼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9일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일본의 초밥 장인 후지모토를 만나 여동생 김여정이 미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5인, 왼쪽부터 박봉주 내각 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2016.05.08 손성배 기자 북한이 36년 만에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통치 방식과 장성택 숙청에 대해 재조명했다. 2016.05.08 NO 바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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