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LG가 마지막 어른 '구태회 회장'은 누구?

사촌·무욕경영 앞세워…경영권 분쟁 없애<br />
국회의원 6선 당선, 국회부의장까지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5-07 20:59:48

(서울=포커스뉴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향년 93세의 나이로 7일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의 별세로 LG그룹의 창업 1세대는 역사에서볼 수 없게 됐다.
구 명예회장은 후쿠오카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구 명예회장은 1950년 락희화학 공업사 전무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구 명예회장은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 개발에 앞장섰다. 1962년 잠시 금성사 부사장을 맡은 후 다시 정치권에서 오랜 경력을 쌓던 구 명예회장은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로 정계에서 은퇴, 다시 LG그룹 경영에 전념하게 된다.

구 명예회장은 1988년 LG화학의 창업 고문, 1995년 LG그룹 창업 고문 등을 맡다가 2003년 LG그룹에서 전력, 전선, 에너지 등을 분리해 LS그룹을 창립했다.

그는 동생인 구평회, 구두회와 함께 LS 그룹을 세우면서 '사촌경영', '무욕경영' 등을 경영 철학으로 내세웠다. LS가는 최근까지도 2세 경영인으로 구성된 '8인회'가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룹의 공동경영은 LS그룹을 '왕자의 난' 같은 경영권 분쟁이 없도록 만들었다. 지난 2012년 LS그룹 회장을 맡고있던 구자홍 회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10년의 임기를 채우고 LS그룹 회장직을 사촌동생인 구자열 현 회장에게 물려준 바 있다.

구 명예회장은 범 LG가의 마지막 어른이지만 정치인으로서도 입지 높은 경력을 쌓았다.

1958년 자유당 후보로 경남 진양군에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5대 총선에선 낙선해 잠시 경영을 맡은 후 제6대, 제7대,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한다. 9대 국회의원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또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여당 몫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국회 부의장을 맡으면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당선돼 6선의 의원이 되지만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 등에 대한 조사를 받은 후 정치규제를 당하기도 했다.구태회 LS그룹 전선 명예회장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