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어린이들, '관계'를 배운다

도심 속 숲 활동‧노인정 방문‧채소 기르기 등 각양각색 활동<br />
학부모 "알면서도 바빠서"…전문가 "올바른 정서발달에 중요"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5-05 10:27:08

△ 봄이 좋아요

(서울=포커스뉴스) # 올해 4살인 성준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성준이가 태어나기 전 모두 돌아가셨다.

성준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도 이유는 다르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 부모님과 서울에 살다보니 지방에 계신 조부모를 자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어버이날 다음날인 9일 성준이네 반 아이들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예정이다. 매주 1회 경로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공연하며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께 말이다.

# 지난주 유치원에서 '뒷산 오르기' 활동을 다녀온 민이(6)는 먹을 수 있는 꽃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꽃 냄새를 맡으며 야들야들한 잎의 촉감을 오롯이 느껴본 것도 처음이다.

이날은 특별히 선생님이 준비해 온 진달래 꽃잎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하얀 밀가루 반죽을 올렸더니 분홍 진달래꽃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피는 것 같았다.

민이의 어머니 김모(32)씨는 "피자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아이가 이젠 화전을 찾는다"며 "식용 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난감하지만 피자를 찾을 때보다 마음은 더 흐뭇하다"고 말했다.

도심 속 아이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이미 수년 전 유‧아동의 스마트폰 이용비율이 50%를 넘어선 상황. 나뭇가지보다 스마트 기기의 감촉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야외 체험활동은 조금이나마 유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 '주 1회 이상 자연학습' 소소하게, 크게 배운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ㅅ' 유치원은 7세(만 6세) 반 아이들을 상대로 주 1회 '숲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숲 활동이란 공원과 뒷산 등에서 진행하는 자연체험 활동을 말한다.

활동 시간에는 꽃이나 나무뿐만 아니라 모래, 새, 나비 등 하나의 주제를 정해 아이들이 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등 오감을 이용해 대상을 탐구하도록 한다.

유치원 교사 김모(31‧여)씨는 "교실에서 구연동화나 노래로 알려주는 것보다 직접 나와서 체험하게 할 때 아이들이 확실히 보다 집중한다"며 "무엇보다 질문도 훨씬 많고 답변을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다"고 말했다.

관악구의 'ㄷ' 어린이집은 인근에 공원이나 야산은 없지만 비슷한 취지로 야외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고무대야 여러 대에 상추, 고추 등 채소를 심어 가꾸는 일인데, 모종을 심고 물을 주는 등 대부분의 작업을 7세반 아이들이 직접 한다.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27‧여)씨는 "불과 10~20분 사이에 끝나는 활동이지만 아이들이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회사원인 A(33‧여‧서울 서대문구)씨는 "주기적으로 이런 활동을 하니 아이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실제로 나무색, 잎파리색을 표현하는 것부터 달라졌다"고 말했다.



◆ 다양한 프로그램…'세대 간 사다리' 되기도

자연체험 활동 이외에도 견학, 직업체험, 공방체험 등 3~7세 아동들의 야외활동 수업은 다양해지는 추세다.

종로구에 위치한 'ㅁ' 어린이집은 지역 경로당을 찾는 지역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 구성이 단출해지면서 노인과 어린이가 마주할 일이 드물어진 환경에 착안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준비해온 연극 공연, 합창 등 장기자랑을 선보이고 한 끼 식사를 함께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린이집 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부모 이외의 어른을 접할 기회가 극히 적다"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노인공경과 효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활동 취지를 설명했다.

4세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 A(34)씨는 "친정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시댁은 시골이라 아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주할 일이 없는데 이런 시간을 주기적으로 보낸다는 게 매우 의미 있다"며 "아이가 경로당 갔다 온 날엔 집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 정서적 발달에 큰 도움…'안전사고'는 항상 유의

전문가들은 교실 밖에서 진행되는 학습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한 아동전문가는 "탐방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여러 대상들과 직접 접촉하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교실 밖 다양한 환경은 상황 대처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특히 흙과 나무 등 자연물을 직접 만지는 것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모래놀이치료사인 채성용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다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실제로 식물을 이용하는 원예치료기법이 있다"며 "유아기에 이런 경험을 자주 하면 정서 발달은 물론 스스로 내적 강화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외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10년 차인 이모(38)씨는 "보통 20명의 아이들을 교사 3명이 함께 인솔하는데 버거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주기적으로 가는 곳이든 처음 가는 곳이든 아이들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가운데서도 야외활동을 진행했던 일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학부모 항의가 빗발친 일도 있었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대기환경이 올 봄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에 야외활동 전에는 대기환경 문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총체적인 사전 확인을 통해 만반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서울=포커스뉴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서 열린 벚꽃축제를 찾은 어린이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2016.04.07 양지웅 기자 포커스포토 (서울=포커스뉴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난지잔디광장에서 2016 마포어린이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버블쇼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6.05.04 김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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