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4·13-당선人> 인천 계양을, 더민주당 송영길
잠자던 대권 잠룡 부활하나…송영길 정계 복귀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4-14 10:45:14
△ 지지호소하는 송영길 후보
(서울=포커스뉴스) 한때 대권 잠룡으로 평가 받으며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송영길 당선자가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이로써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하며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았던 송 당선인은 재도약에 나서게 됐다.
1963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 당선인은 광주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송 당선인은 1984년 군사정권 아래서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 2월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인천 대우자동차 공장 건설현장 배관용접공과 택시회사 등을 오가며 현장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로 7년의 시간을 보냈다.
92년 서른살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2년만인 94년 합격(사시 36회)했다.
이때부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을 오가며 본격적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송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한건 1999년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안상수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안 후보와 다시 한번 격투를 벌인 끝에 금배지를 거머쥐게 됐다.
이후 17,18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3선 중진의원이자 최고위원으로 대권 잠룡으로 떠오르게 됐다.
송 당선인은 투박한 외모와 뚝심있는 성격 탓에 얻은 ‘황소’라는 별명처럼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일꾼으로 정평이 나있다.
초선이던 2001년 정풍운동을 주도해 2003년엔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한미FTA 찬성과 대북송금 특검 반대 등 당내 중론과는 다른 소신을 밝혀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굽히지 않는 모습에 뚝심있는 정치인이란 평가도 함께 받았다.
송 당선인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검토했지만 당의 권유로 제2의 고향인 인천시장에 출마했다.
당시 시장이던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젊은 리더십’을 무기로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현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하면서 정치생명에 시련을 맞게 됐다.
송 당선인은 이후 스스로 1년간 중국 유학길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송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되자 “송영길의 손을 잡아 다시 세워주신 계양구민 여러분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일하는 국회의원으로 보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주요 프로필
△1963년 전남 고흥 출생 △광주 대동고·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새천년민주당 원내부총무,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열린우리당 한미FTA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선 5기 인천광역시장, ㈔먹고사는문제연구소 이사장, 16·17·18대 국회의원제20대 총선에 출마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계양을 후보가 6일 오후 인천 계양구 계산역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2016.04.06 오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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