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갈림길' ELS 손해배상 소송

주식대량매도 행위, '시세조종 vs 델타헤지'<br />
RBC 상대 증권집단소송, 11년 만에 첫 재판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4-07 18:14:21

△ [대표컷] 증권사기, 금융사기, 사기

(서울=포커스뉴스) ELS(Equity-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와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상품화된 ELS는 투자경험이 없는 일반 시민에게 생소한 금융상품일 수밖에 없다.

ELS를 쉽게 풀이하자면 개별주식 가격이나 주가지수와 연계해 투자수익을 만들어내는 유가증권이다.

또 자산을 우량채권에 투자해 원금을 보존하고 이중 일부를 주가지수 옵션 등 금융파생 상품에 투자함으로써 고수익을 노리는 금융상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ELS는 주가지수에 따라 그 수익이 정해지다보니 주가지수가 상승할 때 수익을 내는 것, 등락구간별 수익률이 달라지는 것 등 그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투자시점 이후부터 만기까지 중간마다 정해진 상환기준 결정일이 있고 그 기간에 ELS가 가진 상환조건을 달성해야만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종종 상환기준 결정일에 맞춰 금융기관이 ELS와 관련된 개별주식 등을 대량으로 매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ELS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시세조종행위, “투자자 손해 배상하라”

김모(61)씨 등 투자자 26명은 지난 2007년 8월 31일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ELS에 투자했다.

한국투자증권의 ELS는 삼성전자, KB금융 등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고 만기 시 기초자산의 만기평가가격이 모두 최초 기준가격의 75% 이상인 경우 연 28.6%의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반면 상환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채 만기까지 한 종목이라도 최초 기준가격의 60% 미만으로 하락한 적이 있고 한 종목이라도 만기평가가격이 최초 기준가격의 75% 미만이면 하락폭이 큰 종목의 하락률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한국투자증권은 상환조건 충족 시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상환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도이치은행과 스왑계약(백투백 헤지)을 체결했다.

이는 도이치은행이 발행한 동일한 구조의 ELS를 투자금으로 매입해 실질적 상환책임을 도이치은행으로 넘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ELS의 만기평가가격 결정일인 지난 2009년 8월 26일 삼성전자 주가는 상환조건 기준가격 42만9000원을 상회하는 70만원대에 형성됐고 KB금융 주가는 상환조건 기준가격 5만4740원과 비슷한 5만4000원대에서 등락했다.

그러나 도이치은행은 같은 날 KB금융 주식 24만2000여주를 매도했고 결국 KB금융 주식의 종가는 상환조건 기준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5만4700원에 결정됐다.

결국 김씨 등은 상환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채 ELS가 만기돼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투자금의 약 74.9%만을 돌려받게 됐고 “도이치은행이 상환조건 달성에 따른 투자수익률을 적용하지 않으려고 시세조종행위를 한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도이치은행의 주식대량매도에 대해 주가가 오를 때마다 주식을 팔았다고 보고 시세조종행위로 판단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6조 4항 3호는 증권의 매매 등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증권시세를 변동 또는 고정시키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도이치은행은 주가가 올라간 오후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도했다”며 “당시 기초자산 주가가 상환조건 기준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가를 낮출 동기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 델타헤지, “배상 책임 없어”

문제는 ELS가 존재하는 이상 필수적으로 델타헤지가 쫓아다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주식대량매도 행위를 모두 불법으로만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가 매번 달라지는 것도 결국 델타헤지 때문이다.

델타헤지는 ELS 상환재원 확보를 위한 정당한 금융기법으로 자본시장법 등에 따라 자산운용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법령상 의무다.

델타헤지는 옵션가격과 기초자산가격의 상관관계를 이용한 위험분산거래로 기초자산의 주가변동에서 야기되는 위험을 관리하고 동시에 그 거래과정에서 얻게 되는 이익을 ELS의 상환재원으로 활용하는 거래이다.

가령 상환조건 달성이 가능해지면 계약에 따른 수익률이 적용된 투자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줘야하기 때문에 ELS의 기초자산이 된 주식을 팔아 현금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주식대량매도가 진행됐다면 정당한 거래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금융기관의 주식대량매도 행위가 델타헤지로 인정된다면 손해배상 소송을 낸 원고의 청구는 기각될 수밖에 없다.

삼성새마을금고는 지난 2007년 10월 10일 하이자산운용 주식회사의 투자신탁에 2억원을 투자했다.

하이자산운용은 투자신탁 투자금 전액을 인수대금으로 사용해 현대증권과 ELS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증권의 ELS는 삼성전자와 신한금융지주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고 2년 만기 시 두 주가의 기준가격이 최초 기준가격의 75% 이상인 경우 연 14%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두 금융기관의 인수계약으로 하이자산운용의 투자신탁 수익은 현대증권의 ELS 수익발생 여부에 결정되는 구조가 됐다.

또 현대증권은 ELS의 조기상환 조건이 충족되거나 만기 시 약정조건이 충족될 경우 하이자산운용에 일정한 상환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안게 돼 백투백 헤지 거래 목적으로 동일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매입하는 스왑계약을 비엔피파리바은행과 체결했다.

현대증권은 스왑계약을 통해 ELS 발행으로 인한 상환책임을 비엔피파리바은행에 이전했다.


ELS 만기 기준가격 결정일인 지난 2009년 10월 7일 삼성전자 주가는 상환조건 기준가격 41만4000원을 훨씬 상회하는 70만원대에 형성됐고 신한금융지주 주가는 상환조건 기준가격인 4만5651원과 비슷한 4만50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비엔피파리바은행은 당일 단일가매매시간에 신한금융지주 주식 15만3410주를 시장가 매도주문했고 이중 5만960주를 실제 매도했다.

이 과정에서 신한금융지주 주가는 4만5800원에서 상환조건 기준가격보다 낮은 4만5450원으로 떨어져 ELS의 만기상환조건이 무산됐다.

삼성새마을금고는 투자신탁 만기일에 투자원금 2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1억4981만3648원을 만기상환금으로 수령해 약 25%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이에 대해 삼성새마을금고는 “신한금융지주 주식 대량매도로 ELS의 만기상환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며 비엔피파리바은행을 상대로 1억618만6352원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반면 피엔피바리바은행은 “주식 대량매도는 델타헤지”라며 “델타헤지를 통해 투자자에게 지급할 상환금을 마련해야 하고 보유한 기초자산이 주가변동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반론했다.

이에 대해 1·2심은 “비엔피파리바은행의 주식매도행위는 델타헤지에 따른 주식매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지난달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 판단의 갈림길에 놓인 ELS 손배소

최근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양모(61)씨 등 투자자 2명이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제기한 증권집단소송 허가신청 사건의 재항고심에서 집단소송을 허가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이 사건도 RBC가 만기상환 기준일에 기초자산인 SK 주식을 대량 매도한 행위를 시세조종행위로 볼 것인지 델타헤지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다.


시세조종행위로 인정될 경우 소송을 낸 투자자 2명 이외에도 다른 피해자 435명이 동일한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델타헤지로 인정된다면 RBC는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결국 ELS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금융기관의 주식대량매도 행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ELS 관련 손해배상 소송들이 시세조종행위와 델타헤지로 나뉘는 판단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이유다.이희정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 오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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