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人] 이윤기 감독, 전화번호부에서 '남과 여'를 찾다
"불쑥 그렇게 되는 것. 그런 순간이 좋다고 생각"<br />
"차기작은 남자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2-28 13:40:44
△ 영화
(서울=포커스뉴스) 이윤기 감독은 인터뷰가 진행된 카페 이름을 궁금해 했다. 라디오와 관련된 카페 이름은 자연스레 라디오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내 궁금증이 건너편에 보이는 카페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 대한 상상으로 옮겨졌다. 참, 궁금한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고, 달리 보이는 것도 많은 사람이다.
'남과 여'는 이윤기 감독이 6년 동안 품고 있던 프로젝트다. 초안 시나리오는 현재와는 달랐다. 6년 동안 조금씩 시나리오를 고치고, 캐스팅을 알아보며 지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완성됐다. 직접 이름 지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애매한 상민(전도연 분)과 평범한 남자의 이름으로 생각해낸 기홍(공유 분)이다.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졌다. 그러니 이상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 나오더라.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 둘 다 제가 아는 친구들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기홍 역시 같은 이름의 후배가 있다. 비슷한 느낌이 있다. 애매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이 이름으로 하면 되겠다 싶었다."
이윤기 감독이 가까이에서 영화의 흐름을 찾는 것은 '남과 여'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의 전작 '러브 토크'(2005년) 때도 아는 사람을 떠올리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었다. 영화 제목이 '남과 여'인 만큼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는 중요했다. 어디서 사람들을 모델링해서 조금씩 뽑아 온다는 이 감독이다.
"어차피 영화 속에 캐릭터는 완벽하게 현실적인 캐릭터 일 수는 없다. 전도연에게 막연하게 상민은 헬싱키 여자 같으면 좋겠다는 농담도 했었다. 남들과 다른 결점이 있어도, 크게 불행해 하지도 않고 순응하고, 그렇다고 남에게 표시도 안 내고. 공유에게 기홍은 도쿄 남자 같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급스러운 오모테산도에 우아한 사무실을 놓고 건축을 하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은 캐스팅 이유가 컸다. 유독 캐스팅이 어려웠던 작품이다. 여자 주인공인 상민 캐릭터가 특히 그랬다. 전도연도 여러 번 거절했었다. "여배우들은 다들 힘들어하더라. 하고 싶어도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전도연 씨가 마음을 바꿔서 하겠다고 했다. 상민이 확정된 후, 기홍 역을 캐스팅했다. 말랑말랑한 그가 건조한 기홍과 만나면 더 애매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거라 생각했다. 단순히 폼 잡는 이미지가 아니라,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이윤기 감독이 '남과 여'의 초안 시나리오에 매료된 것은 "전형적인 멜로 영화도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내가 하면 조금 다르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유였다. 그 생각은 6년 동안 이어졌다. 그 시간 내내 상민과 기홍을 품고서 이들의 사랑을 되뇌었다. "건조함 속에 두 사람의 동질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랑 되게 비슷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거다. 현실에 대한 도피로 다른 이성을 꿈꾸는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상황적인 설정은 다르지만, 결국 어른 이전에 남자와 여자인 사람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던 감독이다. "도피할 생각이 없었던 두 사람이다.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빠져든 느낌을 담았다." '남과 여'의 제작진 코멘트에서 이 감독은 "'남과 여'는 아주 직설적인 사랑 그 자체의 감정 속에서 두 주인공이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민과 기홍의 이름을 자신의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찾았듯이, 사랑은 일상에 있었다. 이윤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멋진 하루'(2008년)에서 병운(하정우 분)이 격투기 선수가 꿈에 나온 이야기를 할 때, 희수(전도연 분)는 울음을 터트린다. '남과 여'에서도 그렇다. 기홍은 둘만 남은 핀란드 사우나에서 요정 이야기를 한다. 상민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든다. 사람의 마음은 큰 고백보다, 조그만 쪽지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포착하는 감독이다.
"그게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불쑥 그렇게 되는 것. 나도 모르게 그런 순간이 좋은 거 아닌가. 그게 더 기억에 남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아마 다른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그런 지점을 내가 포착했을 때,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할 거야'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제가 유치한 면도 있고, 좀 특이한 관점을 가졌다는 말은 듣는다. '그러니까 감독이나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 정혜'(2005년), '멋진 하루'(2008년) 등 이윤기 감독은 사랑의 순간을 스크린 속에 담아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 감독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연결고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남과 여' 역시 "친절하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는 변화를 꿈꾼다. "액션이 가미된 스릴러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그다.
"사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귀신 나오는 호러만 제외하면. 그건 내가 무서워서 못 할 것 같다. 그 외 모든 장르는 당연히 욕심이 난다. 큰 스케일의 작품도 해보고 싶다. 계획은 잡고 있지만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저런 영화들이 있지만, 현재 가장 빨리 만나보고 싶은 건 액션이 가미된 스릴러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서울=포커스뉴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남과 여'의 이윤기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2.23 김유근 기자 이윤기 감독(중간)이 '남과 여' 촬영 현장에서 상민 역의 전도연(좌측)과 기홍 역의 공유(우측) 사이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기홍(공유 분)과 상민(전도연 분)이 핀란드 설원을 걷고있다. 사진은 '남과 여' 스틸컷. 상민(전도연 분)과 기홍(공유 분)이 KTX를 함께 타고 이동 중이다. 사진은 '남과 여' 캐릭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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