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투정?' 취직해도 힘들어요"…신입사원의 고민

극심한 청년 실업…'신입사원=승자' 등 취업중심 사고 등장<br />
'취업=목표' 상실한 신입사원들 무기력증 등 고통 호소<br />
위계적인 기업 문화에 숨이 막힌다…'성차별'도 여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2-22 18:20:15

(서울=포커스뉴스) #1 올해 초 1년 만의 백수생활을 끝내고 대기업 총무부에 입사한 정은규(27)씨는 회사 생활이 혼란스럽다. 자신이 대기업 직장인인지 상사들에게 고용된 개인 심부름꾼인지 헷갈려서다. 정씨는 상사들의 영수증 처리뿐만 아니라 틈틈이 택배, 담배 심부름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생활을 위해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아왔냐’고 어디라도 푸념을 털어놓고 싶지만 주변에는 취업준비생들이 대부분이라 속만 끓인다.

#2 김미정(26·여·가명)씨는 지난 연말 ‘신이 선택한 직장’ 중 하나라 불리는 정부기관에 입사했다. 지원서를 제출한 30여개 기업 중 김씨를 선택한 유일한 곳이다.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과 달리 최근 김씨는 급격한 무기력증으로 동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김씨는 “취직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이제 무슨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저 돈 버는 기계가 된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청년이 ‘열정’, ‘청춘’ 등과 동의어로 쓰이는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제 사람들은 청년하면 자연스레 ‘실업’을 떠올리게 됐다.

22일 기준 네이버, 다음 등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에 ‘청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 상단에 ‘청년 백수’, ‘청년 절벽’, ‘청년층 빈곤’ 등 실업과 관련된 단어가 다수 포진해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로 조사됐다. 청년 10명 중 1명이 백수라는 것이다.

청년실업률은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 등으로 매년 악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젊은층 사이에서는 ‘취업만 하면 된다’, ‘신입사원=승리자’ 등라는 취업중심의 가치관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신입사원들은 “취업이 끝이 아니다. 결이 다른 고통의 시작”이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 모두들 ‘배가 불렀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디 털어놓을 곳도 없어 더욱 괴롭다”며 호소한다.

신입사원들이 주로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는 무기력증이다. 취업이란 유일한 목표를 위해 20대 초중반을 보내고 나니 취업 뒤에는 오히려 동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김예진씨는 “취업이 되고 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될지 모르겠다. 내 인생이 이제 시작이란 생각보다 모든게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돈을 번다는 것 말고는 좋은 점이 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까지 처방받고 있다”며 “부모님조차 ‘취직하면 다 힘들고 취업준비생들은 더 힘들다’며 고민을 무시해 병원에 다니는 것도 털어놓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남 창원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A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는 “은행권 취업만 생각하고 대학 6년을 공부했지만 막상 은행원이 되고 나니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하지만) 취업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무섭다. 20대를 가능성의 시기라고 보는 것은 이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위계적인 기업문화 등 직장 환경과 마찰로 고통받는 신입사원들도 많다.

개인주의 확산으로 자유로운 성장기를 보낸 20대들의 생활환경과 달리 상명하복식 군대문화가 아직도 기업에 잔재한다는 것이다.

정은규씨는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왜 상사들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다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동료가 회사에서 문제사원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고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회사는 그대로인 것 같다”며 “저번에는 과장의 말에 답을 했다고 사수에게 말대답을 하지 말라는 눈치를 받았다. 이럴거면 복종(순종)하는 사람을 기업인재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씨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얼마 없는 사실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했다.

그는 “학과 선후배들과 가끔 술자리를 갖는데 대부분 취직을 못한 상황이라 한 번은 취직한 선배가 회사 스트레스를 털어놔 분위기가 싸늘해진 적이 있다”며 “가장 친한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취업이 인간관계까지 해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일부 여성 신입사원들은 성차별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직도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 등을 전담시키거나 성희롱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무역 관련 중소기업에 다니는 B(여)씨는 “부서에 나와 남자 신입사원 3명이 있는데 상사들이 커피 심부름, 영수증 처리 등 사소한 일들은 나에게만 시킨다”며 “윗 사람들은 아직 여자들은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회사를 떠날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이 정도는 애교”라며 “술자리에서는 ‘B씨가 따르는 술이 더 맛있다’며 술 따르기를 은근히 강요하기도 하고 ‘다리가 예쁘다’ 또는 ‘얼굴이 어떻다’며 여자 직원을 대상으로 외모 평가도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성희롱 문제가 사회 문제로 여겨지고 상사들과 직장 내 성희롱 강의도 함께 들어 그간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는데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희망을 버려야 하는 건가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22일 기준 포털사이트 다음에 청년을 검색할 시 나오는 연관 검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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