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애들 알고 싶지 않으세요’…연합군이 본 위안부 '운명'
일본군 위안부 관심 밖?…“전쟁의 다른 관심사에 비해 덜 중요한 문제”<br />
전쟁이 끝난 후 위안부의 운명은…‘참혹’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2-19 18:22:44
△ 그_여자들에_대해.jpg
(서울=포커스뉴스)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안됐을 때 호주 병사 앵거스 맥두걸(Angus McDougall)은 일본군에 붙잡혔다.
싱가포르의 창이전쟁포로수용소에 있던 그는 태국의 반퐁수용소로 이송되는 ‘지옥’같은 여정을 기억했다.
호주 전쟁기념관 웹사이트에 올라온 그의 이송과정을 담은 육성 인터뷰를 듣다보면 그가 면담자에게 뜻밖의 질문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 여자애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트럭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에 따르면 이송기차에는 전쟁포로들 외에도 25~30명 가량의 말레이시아인이나 중국인으로 보이는 ‘위안 소녀들(Comfort Girls)’이 있었다.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학교 교수는 ‘그 여자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위안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군과 연합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최근 한 국제학술지에 기고했다.
◆ 그들의 눈에 비친 일본군 위안부…‘관심 밖?’
앵거스 맥두걸은 그가 본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인이 아니라 말레이·인도·중국사람 등으로 이뤄진 다민족 집단이었고 여자애들이 포로처럼 이송돼 지옥 같은 조건 속에서 태국이나 버마에 있는 일본군위안소로 가는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로 파견돼 일본이 전쟁에서 항복한 후 심문을 도운 호주의 통역자 프레드릭 아르블래스터(Frederick Arblaster)도 일본군 위안부와 마주친 것을 기억했다.
그는 당시 일본군 장교에서 ‘이 여자애들’에 대해 묻자 일본군 장교가 “적십자 요원들이고 병원 간호사다”라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여자애들’을 보고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가장 우스꽝스럽게 생긴 적십자 의료진”이라며 지휘장교에서 조사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논문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곳곳에 산재한 일본군위안소의 존재는 때로는 비난의 주제로 더 많게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간주됐다”며 “그러나 전쟁의 다른 관심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재중국 영국 선교사 레슬리 라이얼(Leslie LYall)은 1937년이나 1938년에 일본군이 점령한 허베이성 지역에서 일본군 지휘관이지역 교회 건물을 위안소로 사용하려 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그는 이 여자애들의 운명에 대해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며 “자기 교회가 매춘의 오점을 씻어내게 된 것에 그저 기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전쟁이 끝난 후 일본군 위안부 운명은…‘참혹’
전쟁 중에도 일본군 위안부의 운명은 가혹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군 위안부는 참혹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일본군 위안부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었다”며 “포로를 실은 트럭에서 일본군 경비병의 감시 아래 이송된 여자애들에 대해 ‘강제연행’이 아닌 어떤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며 “노예는 보수 없이 일하도록 강제되는 것이 아닌 자유가 부정된 것”이라며 “개념규정상 당대의 통상적인 이해는 금전 지급이 없음이 아니라 자유의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군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위안부를 이송한 다음 항복할 때 이들을 유기해 그들의 운명에 맡겼다”고 말했다.
윌리엄 ‘터그’ 윌슨(William ‘Tug’ Wilson)은 왕립포병대에 입대한 리버풀의 선박노동자로 전쟁 당시 인도와 버머 전선으로 파병됐다.
그의 이야기는 ‘오싹’하다.
그는 “긴 두 개의 막대를 보고 ‘이상하네. 똑바르잖아. 정글에서는 어떤 것도 일직선으로 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다 발톱을 보고 들어올렸다가 게이샤 여자애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또 “일본군은 그들을 데리고 갈 수 없었던 것”이라며 “그들을 사살해서 묻어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담긴 논문은 조시현 전 건국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번역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논문집 ‘역사와 책임’ 9호에 실릴 예정이다.호주 종군화가 도날드 프렌드(Donald Friend)의 소묘, 일본의 자바 점령시 일본에 의해 자바 섬에서 보르네오로 이송된, 수척한 자바 원주민들을 묘사. 1945.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1944년 버마에 있는 일본군위안소의 문에서 뗐다고 하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목찰.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일본군이 장교구락부와 위안소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가. 1945년 9월.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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