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오는 송금 대폭 줄어 주변국 경제 휘청
러시아에 인력수출하고 받는 송금에 크게 의존<br />송금가치 떨어진데다 러시아 내 일자리도 줄어
이채봉 기자
ldongwon13@hanmail.net | 2016-01-25 08:27:55
[부자동네타임즈 이채봉 기자]카스피해(海)와 흑해 사이에 있는 캅카스 국가들, 그리고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에 취업한 자국민이 보내오는 송금에 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이 △루블화 가치 폭락 △러시아 내 외국인 일자리 감소 △러시아 내 외국인 노동자 임금 하락이라는 ‘러시아발(發) 3중고’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최근 세계은행 등의 자료를 분석해 별다른 산업기반 없이 인력수출에 주력하는 이 지역 국가들에 러시아로부터 밀어닥친 ‘송금 대란(大亂)’을 소개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근로인구 4명 중 1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이들 해외 이주 근로자가 2014년 본국에 송금한 돈은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2%만큼으로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비율이 높다.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도 GDP의 최소 10%만큼을 이주 노동자에게서 송금 받는다. 이 정도 비율은 해외에 근로자를 많이 내보내기로 유명한 필리핀보다 높다.
캅카스·중앙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는 북(北)으로, 즉 러시아로 건너가 건설 공사장 인부나 여타 저임금 일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 경제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이들 근로자의 본국 송금도 덩달아 곤두박질쳤다. 미국 달러 기준으로 타지키스탄 근로자들이 지난해 상반기 본국에 보낸 돈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 줄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간 돈은 절반으로, 키르기스스탄으로 건너간 돈은 3분의 2로 줄었다.
이런 수치들은 루블화 약세를 크게 반영한다. 러시아 주변국 화폐 역시 하락했지만 그 정도가 루블화만큼은 아니었다. 예컨대 러시아 내 타지키스탄 근로자가 본국으로 부쳐온 1루블을 받은 사람은 은행에서 루블화를 내고 현지 화폐 소모니를 2014년 6월보다 35% 적게 환전한다. 이주 노동자의 러시아 내 생활도 빠듯해졌다. 러시아에서 받는 실질임금이 지난해 11월 현재 1년 전에 비해 9% 줄었다. 일자리 감소와 이민법 강화 때문에 이주 노동자 수 자체도 감소했다.
낮은 송금은 낮은 성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지역의 원유·가스 수입국들(아제르바이잔처럼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도 있다)의 GDP 성장이 지난해 2.3%에 그쳤다고 예상했다(아직 2015년 치가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다). 2014년과 2013년의 성장률은 각각 4.7%와 5.7%였다.
이런 수치들은 송금 감소의 실제 효과를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GDP는 국내 생산을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송금 수령자가 현지의 재화와 용역에 돈을 덜 쓰는 정도까지만 송금 감소를 반영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송금의 직접적인 영향과 교역조건의 악화까지 계산에 넣으면 구매력은 10% 넘게 떨어졌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초과근로를 하고 저축을 헐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도 타지키스탄 전체가구의 약 40%는 식생활조차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람들이 소비를 줄임에 따라 해당 국가 정부들은 수요를 부추기기 위해 지출을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송금을 받아들이는 주요 국가들에서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2%만큼 확대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의 주요 수출품인 알루미늄, 구리, 면화 같은 원자재의 국제시세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도 정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송금대란은 이 지역 특유의 것이다. 여타 지역에서는 2015년 송금 수입이 늘었다.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주로 송금을 받는 남아시아에서는 6% 늘었다. 미국 달러화의 강세, 그리고 걸프 지역 국가들의 재정 팽창이 이 지역 송금액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14년 GDP의 30%만큼 송금을 받은 네팔과 같은 작은 나라들은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충격에 취약해 보인다. 중앙아메리카와 일부 태평양 섬나라들도 송금에 의존하는데 이들 나라도 2009년에는 송금 감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은 지구촌의 송금 총액이 줄어들었던 금세기 유일의 해였다. 이에는 2008년 미국에서 터진 세계 금융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코노미스트가 송금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에 제시하는 해법은 수입원을 다양화하라는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한 듯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투자를 받아 인프라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중국 간의 교역규모는 10년 사이 10배 증가했다.
이주 노동자의 송금에 국가 경제를 의존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튼실한 산업기반을 갖추는 것이 송금 의존국들의 장기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해외로부터의 송금을 고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적지 않은 나라들의 경제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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