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그 후 5년…현장에는 ‘불만의 겨울’
발원지 튀니지에서 일자리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br />
튀니지 뺀 모든 나라 정치 상황 5년 전보다 악화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1-22 08:06:21
(서울=포커스뉴스) 튀니지 민주화 운동 ‘재스민 혁명’이 중동·북아프리카로 번져 대규모 민주항쟁 ‘아랍의 봄’을 촉발한지 5년이 흘렀다. 독재자 벤 알리를 몰아내고 민주체제로 이행한 튀니지는 민주화에 대체로 안착했지만 여타 아랍국들은 상황이 오히려 5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평화적인 방식을 통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로 나아가자던 아랍 민중의 희망은 새로운 독재자들, 억압적 통치, 내전, 반(反)혁명 세력 등에 의해 꺾이고 말았다.
튀니지에서조차 지난 며칠 사이 전국 곳곳에서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 정부가 일부 도시에 통행금지를 선포해야만 했다. 이번 시위는 공무원시험에 실패한 청년이 고압 송전탑 위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자살한 후 청년 1000여명이 일자리를 달라며 정부에 항의하면서 시작되었다. 5년 전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에 불을 지핀 것도 실직 청년의 분신자살이었다.
튀니지 민중이 선도했던 비폭력 저항운동은 튀니지 바깥에서는 모조리 실패했다. 이집트와 바레인에는 독재정권이 다시 들어섰고, 예멘과 시리아는 내전에다 외세의 군사개입까지 겹쳐 나라가 갈가리 찢긴 상태다. 5년 전 폭력혁명에 휩싸였던 리비아는 현재까지 내전이 한창이다. 애당초 ‘아랍의 봄’에 휩쓸리지도 않았지만, 오는 23일 즉위 1주년을 맞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다스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갈수록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중동에서 참된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여기에 미국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비영리기관 중동민주화프로젝트(POMED)의 연구 부책임자 에이미 호손은 “거의 모든 아랍국이 2011년보다 상황이 악화되었거나 이렇다 할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이 지역이 처한 단계는 잔인한 겨울”이라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말했다.
유일한 예외는 튀니지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호손은 “튀니지에는 강력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군부가 없어 민간 정치인과 시민세력이 민주주의로의 정치적 이행을 주도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튀니지에는 또한 민주화 이행을 현명하게 관리한 강력한 시민사회와 실용주의적인 세속(世俗)·이슬람 정치 지도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튀니지와 달리 이집트에서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나자 사회혼란과 정치 양극화가 기승을 부렸고 그러다 끝내 군부가 재등장해 무바라크의 계승자인 무하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스스로 권력을 잡았다.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대학의 정치학 교수 아므르 함자위는 “힘 있는 정부기관들이 민주주의 이행을 되돌리려 애썼고, 엘리트들은 민주주의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그들 자신의 이익만 돌보았으며, 세속이든 이슬람이든 정치 행위자들은 이념투쟁에 몰두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고 VOA에 말했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2013년 군부가 무르시 정부를 뒤집는 무대가 마련되었다고 함자위는 설명했다.
이집트 민주화 실패에 대한 호손의 분석은 한결 구체적이다. “이집트에서 민주화 세력은 분열되었고 권위주의 세력에 반격을 가할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호손은 “이집트 군부는 민주주의 구축을 방해하는 데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했으며, 무슬림형제단은 민주주의 이행을 주도하지 못했다. 튀니지 이슬람정당인 엔나다와 달리 무슬림형제단은 매우 이기적이며 근시안적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호손이 판단하기에 아랍 봉기의 최악 실패사례는 시리아, 리비아, 그리고 예멘이다. 그녀는 “시리아에서 평화적인 봉기를 분쇄하는 데 정권이 사용한 압제의 수준은, 이란·사우디아라비아·터키 간의 전쟁터가 된 무장분쟁으로 그 봉기를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리비아에서는 정치제도의 결여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었으며, 예멘에서는 걸프국가들에 의해 주도된 흠 있는 정치적 이행이 내전으로 연결된 뿌리 깊은 정치논쟁을 미봉(彌縫)했다”고 말했다.
봉기 이후 처음 구성된 이집트의회에서 의원을 지낸 함자위는 아랍 봉기 5년을 맞아 교훈 몇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먼저 “정치 행위자들은 이념 분열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면서 “권력을 확고히 장악하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잔인함을 마다 않는 독재자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함자위가 드는 또 다른 교훈은,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고 역내(域內) 민주주의 이행을 억압하는 걸프 왕정국가들과 같은 역내 행위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이에 공감한다는 호손은 조직과 기획이 성공적인 민주화 이행의 열쇠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호손은 “민주화 운동은 더 잘 조직하고 봉기 이후 초래될 것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더 나은 통치 체제, 더 개방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사회정의와 자유를 위해 젊은 아랍인들이 봉기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봉기의 제1파(波)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아랍 민중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는 호손은 “희망은 분쇄되었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2011년 봉기는 조만간 닥칠 또 다른 지진을 예고하는 일종의 1차 지진이었다”고 말했다.
함자위는 2011년의 중요성은 아랍민중이 그들의 열망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봉기한 것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사람들은 사회정의, 민주주의로의이행, 인권존중, 현대적 국가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다시 등장하겠지만 그것이 언제 어떤 형태일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이집트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한 시위대가 2011년 2월 10일 환호하고 있다.민주화시위 이후 정권을 잡았던 무슬림형제단은 2013년 7월 군부에 의해 축출되었으며 2014년 대통령에 오른 압델 파타 엘시시는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Photo by Chris Hondros/Getty Images)2016.01.21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의 고급 식당 외벽에 내걸린 왕실 초상화.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위), 왕세자 무하마드 빈 나예프(오른쪽), 부왕세자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의 모습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932년 이븐 사우드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사우드 왕가에 의해 통치된다. 이 나라는 수니파 이슬람의 분파인 와하비즘의 엄격한 이슬람 원리에 입각해 다스려진다.(Photo by Jordan Pix/ Getty Images)2016.01.21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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