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20대 청년의 꿈 빼앗은 진범은?(종합)
14일 아더 존 패터슨 11차 공판 기일 진행<br />
애드워드 리, 재정증인으로 비공개 증인신문 진행<br />
서증조사 도중 검찰·변호인 고성 오가<br />
피해자 변호인·피해자 母 진술도 진행돼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1-14 20: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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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1997년 4월 3일, 꿈많던 24살 청년 조중필씨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19년 전 진실을 가리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결심 전 마지막 공판이 14일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 심리로 이날 열린 아더 존 패터슨(37)의 11차 공판기일에는 애드워드 리(37)의 재정(在廷)증인 신문, 미군 범죄수사대(CID) 진술조서·선서진술서 서증조사, 피해자 진술 등이 이뤄졌다.
이날 리의 증인신문은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당초 계획되지 않았지만 리가 검찰의 요청으로 증인보호실에 출석하면서 재판부가 그를 재정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재정증인이란 형사소송법 제154조에 규정한 것으로 증인이 임의로 법원 구내에 있는 때 소환을 하지 아니하고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을 말한다.
검은색 파카를 입고 재판정에 들어선 리는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증인석으로 향했다.
증인석으로 가는 중간 패터슨이 앉은 피고인석을 지나야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당초 재판부는 “앞서 선서를 했던만큼 따로 선서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변호인 측은 즉각 항의했다.
변호인 측은 “선서를 반드시 했으면 좋겠다”며 “검찰 측 역시 종전 조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읽으면서 이렇게 진술한 내용이 맞는지를 정확하게 물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증인선서가 이뤄졌다.
리는 “출석하지 않으려 했는데 검찰 측 요청에 어렵게 마음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검사 질문에 “다시는 법정에 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검사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고 유가족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법정에 나왔다”고 답했다.
이어 “그러나 피고인의 변호인이 부담스럽고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답변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반대신문권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차례 설전이 오갔다.
리 측이 검찰로부터 ‘따로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2분 안에 신문을 마무리하겠다’는 안내를 받고 출석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미 증인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이 확정돼 있기 때문에 다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한 사유 없이 증언 거부를 해서는 안되고 거부하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변호인도 에드워드에 대한 반대신문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중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사가 제출한 조서내용 중 추가로 진술되거나 변경된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에 한정돼 신문을 해달라”며 변호인에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호인 신문이 시작되면서 재판정에는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변호인 측이 검찰조사를 받을 당시 한국말로 진술하고 한국말로 답변한 것인지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리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진술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어 변호인 측은 리의 가족을 언급했다.
앞서 변호인은 리의 증인신문에서 그의 가족을 언급해 한차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즉각 “확인 가능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말라”고 제재했지만 리 측의 불쾌감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리의 아버지는 방청석에 앉아 “얘기하지 마라. 그냥 과태료를 물고 나가자”고 소리쳤고 리도 역시 즉시 퇴장하겠다고 항의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변호인 측에 “변론을 제한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꾸 감정을 자극하지 말고 사실관계만 물어보라”고 경고한 뒤 통역을 통해 “적정하지 않은 질문은 제한하겠다. 사실관계에 맞는 것만 답변하면 된다고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계속해 개인정보에 관한 부분을 질문하려 했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5분간 휴정을 지시하고 검사와 변호인을 따로 불렀다.
이후 재판부가 먼저 입장하자 리의 아버지는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말해도 되겠나”라고 양해를 구했다.
리의 아버지는 “진실을 밝히고자 미국에서 아이를 데려와 증인으로 서게 했다. 절대 오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복장도 보면 아시겠지만 증인으로 나오기 위한 복장이 아니었다”라며 “피고인 변호인이 말하는 모든 것이 인터넷에 다 뜬다. 이미 우리는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라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신문사항에 대해서는 일부만 하기로 했다”며 “어떤 이야기인지 충분히 알고 있고 제재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리의 아버지가 이를 받아들인 후에도 리가 증언을 거부하면서 재판이 20여분간 지연되기도 했다.
리는 “진술하지 않겠다”며 “가족에 대한 부분을 자꾸 언급했기 때문에 그냥 과태료를 물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검찰의 설득 후 아버지가 함께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검찰 측은 리의 신문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3가지만 질문하겠다고 요청해달라”고 이야기했고 재판부는 “원한다면 기자들을 내보내고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다시 검사가 리에게 이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리는 “비공개로 진행하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말해주면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검사와 변호인이 따로 리를 만나 질문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오랜 설득 끝에 리는 기자들의 퇴정을 요청했고 기자들이 모두 재판정을 나선 가운데 비공개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리의 증인신문이 끝난 후 기자들이 다시 입장한 가운데 서증조사가 진행됐다.
첫 서증조사는 당시 리의 여자친구였던 신시아 도렌 시몬스의 CID 진술조서였다.
검찰은 신시아가 사건 직후인 1997년 4월 3일 오후 11시부터 11시 30분 사이 자신을 찾아와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것에 대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당시 신시아는 만 15세의 어린 소녀였다. 다시 말해 그녀는 사건의 진실을 왜곡할 만한 능력이 없는 어린 청소년이라는 것”이라며 “리를 도와주거나 진실을 왜곡할 능력이 없는 어린 소녀에게 사건 직후 한 진술은 마음 편한 친구에게 패터슨이 죽였다는 진실을 말한, 신빙성 높은 진술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리가 전에는 그런 늦은 시간에 여자친구를 찾아간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여자친구를 찾아갔다. 성인도 아니고 중학생에 불과한 여자친구를 밖으로 불러내 옥상으로 끌고간 이유가 의심스럽다”며 “당시 리가 옥상에서 잠이 들었다고 돼 있는데 얼마나 마약이나 술에 만취돼 있으면 그렇게 했겠나”라고 말하며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두 번째 서증조사는 니구로 마이켈 살베이토의 선서진술서(affidavit)였다.
니구로는 사건 발생 당시 패터슨, 리 등과 함께 버거킹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선서진술서에서 패터슨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것을 봤고 이후 피묻은 셔츠를 불태우거나 칼을 버리는 것도 역시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니구로의 서증조사 과정에서 검사과 변호인 사이에 또 한차례 설전이 벌어졌다.
변호인은 검사가 선서진술서와 관련해 제출한 설명자료를 근거로 “선서진술서의 의의를 보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문서 하단에 별도로 서명해야 한다’고 나와있는데 해당 문건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 측은 “뒷장에 있는 부분이다. 서명도 있고 경고 문구도 있다”고 맞섰다.
재판부도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가 됐고 실제 증인이 출석해 증언한 부분”이라며 검찰 측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럼에도 변호인은 계속해 “선서를 하고 진술했다는 서명 날인은 있지만 위증죄 경고 처벌 부분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언급한 뒷면 문서 속에는 이같은 위증죄 경고 처벌 부분이 포함돼 있었다.
결국 변호인도 이를 수긍했다.
세 번째 서증조사는 이슬러 미셸 리거의 CID 진술조서였다.
이슬러는 사건 당일 피해자가 앰블런스에 실려가는 것을 목격한 인물이다. 또 이슬러는 사건 직후 리가 자신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우리가 사람을 찔렀다”고 말한 것을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 측은 “변호인은 리가 ‘우리가 찔렀다’고 말한 것을 살인의 자백으로 보고 있는데 사건 이후 리는 사람을 찔렀다고 떠들었고 패터슨은 친한 친구에게 조차 입을 다물었다”면서 “상식적으로 자기가 사람을 찔렀다면 20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홀에서 이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 미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리의 경우 직접 찌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고 패터슨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친한 친구에게도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다수의 목격자가 ‘사람을 찔렀다’고 말하는 리의 태도가 낄낄대고 웃고 있었다고 했다. 단순한 목격자가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낄낄대고 웃는게 말이 되느냐”며 “이는 당시 리가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해 미쳐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이날 서증조사에서는 로날드 이 라이카이, 토드 그랜트 등 패터슨과 리를 알고 있고 사건 무렵 살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의 진술조서·선서진술서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설전이 이어졌다.
이날 재판 말미에는 피해자 측 변호인과 피해자 어머니가 재판정에 서 피해자를 대신해 진술을 했다.
피해자 변호인은 “피고인의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극단적인 인명 경시의 살인이고 명확히 확인된 사실조차 부인하는 등 반성이 없는 태도를 보인 만큼 엄히 처벌해야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피해자 변호인은 “법정에 여러 부모님이 등장했다. 모두 자기 자식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해 아낌 없이 변론했다”며 “그러나 피해자의 어머니는 변론은커녕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진실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피해자임에도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다. 부디 엄히 처벌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어머니가 재판정에 섰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있는 상황에서 진술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를 묻자 “해야 한다. 자식을 위해 뭐를 못하겠나”라고 답하며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곧 준비해온 글을 읽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손을 떨며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냈다.
그는 “우리 가족은 3대가 모여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97년 4월 3일 중필이가 나쁜 아이들 칼에 잔인하게 찔려 죽으며 행복은 끝이 났다. 희망도 없고 절망 속으로 빠져갔다”며 “교통사고나 몸이 아파 죽었어도 가슴이 찢어졌을 텐데 나이도 어린놈들에게 9군데나 칼에 찔려 마지막까지 고통스럽게 죽었다. 이 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둘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사람을 놀이 삼아 죽여 놓고 죄를 받지 않으려고 서로 미루고 있다”며 “내 마음 같으면 나도 중필이 죽인 것처럼 두 사람을 똑같이 죽이고 싶다. 그래야 뭉친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아들은 억울하게 죽었는데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하나. 죽인 범인이라도 잡아 구속을 시키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며 “제발 범인을 밝혀 엄한 벌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재판부는 당초 예정된 대로 15일 피고인의 최후 진술과 검사의 구형을 듣는 결심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씨가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다.
검찰은 당초 사건을 리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짓고 리와 패터슨에게 각각 살인과 증거인멸죄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1998년 9월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리의 무죄 선고 이듬해 조씨의 부모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지만 패터슨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이로부터 12년 뒤인 2011년 12월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
법무부는 2011년 5월 미국에서 패터슨을 검거한 뒤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연방법원은 2012년 10월 패터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패터슨은 법원에 인신보호청원과 이의신청서를 내는 등 한국 송환에 저항했지만 결국 지난해 10월 23일 국내로 송환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인천=포커스뉴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23일 오전 인천 중구 공항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돼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5.09.23 오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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