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찰 근무신조 ‘보호와 봉사’ 어디 갔나?…너무 쉽게 총질
시카고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목숨 잃는 흑인 잇따라<br />
백악관비서실장 지낸 시카고시장 정치생명 위협받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6-01-04 09:40:28
△ 미국경찰
(서울=포커스뉴스) 시카고 경찰이 사건현장에 출동해 총부터 쏘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 시민이 늘면서 미국 경찰의 근무 모토인 ‘보호와 봉사’가 무색해지고 있다. 시카고 경찰의 치명적인 공권력 남용에 대해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의 정치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이매뉴얼 시장은 가족과 함께 쿠바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다가 일정을 단축하고 돌아와 지난 30일 시카고 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청 바깥에서는 시위대가 “시장 물러가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며 연신 구호를 외쳤다. 외신이 전하는 시장 대변인 켈리 퀸의 성명에 따르면 이매뉴얼 시장은 “시카고경찰국(CPD)의 책임과 신뢰를 회복시키는, 진행 중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자회견 하루 전인 29일 급거 귀국했다.
시카고에서는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여러 주 째 시장의 사퇴를 촉구해오고 있다. 피해망상증에 걸린 듯한 시카고경찰이 무리하게 총격을 가해 지난 10월 17세 흑인 청년이 총을 16발이나 맞아 죽었고 최근에도 흑인 청년과 흑인 중년 여성이 동시에 경찰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의한 최근 사살은 지난 26일 새벽 발생했다. 일리노이대 전자공학과에 다니며 평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약을 먹고 있었던 퀸토니오 르그리어(19)가 연립주택 2층에서 야구 방망이를 흔들며 아버지 안토니오 르그리어의 방문을 부수려 하자 안토니오가 911에 신고를 했다. 이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퀸토니오 르그리어, 그리고 아마도 경찰관에게 문을 열어주려 나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같은 연립주택 1층 세입자인 흑인여성 베티 존스(55)에게 총격을 가했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CPD는 이례적으로 명백한 사과를 통해 존스가 “우연히 타격을 받아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한 희생자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CPD는 그날 치명적인 사격을 가한 경찰관들의 신원이나 사격 당시의 자세한 정황 등에 대해서는 일절 밝히지 않았다. 희생자의 아버지 안토니오 르그리어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기자회견에서 이매뉴얼은 르그리어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경찰의 총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는 테이저총을 현행 700개에서 2016년 6월 1일까지 1400개로 늘려 전 경찰관에게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은 경찰과 시민의 조우(遭遇)가 덜 대치적이고 더 대화적이 되도록 하겠다면서 “무력은 최초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매뉴얼 시장은 이에 앞서 CPD 임시 국장인 존 에스칼란테에게 경찰의 위기대응팀 훈련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훈련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제압할 때의 행동요령 등을 교육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 훈련과정을 이수한 CPD 경찰관은 15%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퀸토니오 르그리어가 어떻게 총격을 당했는지에 대해 CPD가 입을 다물고 있지만 희생자의 어머니 재닛 쿡시는 “테이저총은 다 어디로 간 거냐? 내 아들은 7발이나 맞았다”고 미국 월간지 ‘어틀랜틱’에 말했다. 쿡시는 퀸토니오 르그리어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자기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덜컥 경찰부터 부른 남편을 원망했다. 그러면서 “경찰이란 우리에게 봉사하고 우리를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도 오히려 그들이 목숨을 앗아간다”고 어이없어 했다. 미국 경찰의 근무 모토는 ‘보호하고 봉사한다(to protect and to serve)’이며 경찰은 이 문구를 제복 견장과 순찰차에 새겨 다닌다.
죽은 르그리어의 아버지가 대뜸 경찰부터 부른 것은 경찰에 적법한 조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 미국 시민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행동이다. 미국에서 경찰관은 국가의 대리인이며 따라서 일반 시민과는 달리 사회적 계약에 구속돼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일반 시민은 다른 시민을 보호하도록 보수를 받지 않지만 경찰관은 그러라고 보수를 받는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경찰이 일반 주민보다 분쟁을 더 잘 중재하리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문제는 시카고에서 이런 기대가 너무 자주 빗나갔다는 사실이다. 경찰의 치명적 과잉 진압에 분노한 시카고 시민들은 “시카고 경찰은 묻고 나서 쏘는 것이 아니라 쏘고 나서 묻는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르그리어 사건은 맥도날드 사건에 기름을 부은 최근 사례다. 맥도날드 사건은 지난 10월 14일 흑인 청년 라쿠안 맥도날드(17)가 칼을 소지하고 트럭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시카고 경찰관 제이슨 반 다이크가 맥도날드에게 16발의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제이슨 반 다이크는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됐고 CPD 국장 개리 매카시는 이매뉴엘 시장에 의해 해임됐다.
맥도날드 사건의 여진이 가라않지 않은 상태에서 또 터진 르그리어 사건은 이매뉴얼 시장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시카고 현지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이 입수해 1일 공개한 이메일에 따르면 이매뉴얼 시장 측은 맥도날드가 숨질 때의 광경을 담은 경찰 동영상의 공개를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늦추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의 명령으로 11월 중 공개된 동영상은 “맥도날드가 경찰관들을 향해 칼을 내밀었기(lunged) 때문에 경찰관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경찰 노조의 주장이 엉터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영상이 공개된 후 시카고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잇따르자 백악관과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이 이매뉴엘 측에 상황보고를 요청한 것으로 이메일에 나와 있다.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총질을 하려 드는(trigger-happy) 경찰관들 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총기 소지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다 보니 미국에서는 툭하면 개인 간에 총기로 분쟁을 해결하려 들며 조직 폭력배들은 기관총도 사용한다. 범죄자들이 경찰관 뺨치게 중무장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관들도 범죄 현장에서 총기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일단 범인부터 사살하고 난 경찰관이 죽은 범인 손에 총이나 칼을 쥐여 주는 것은 할리우드 범죄 영화의 단골 장면이기도 하다.(Allison Shelley/Getty Images)용의자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자가 속출한 시카고에서 구랍 31일 시민들이 경찰과 시 당국을 성토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Photo by Scott Olson/Getty Images) 2016.01.04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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