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법조이슈(2)] ‘이태원 살인사건’…진범 밝혀질까

“패터슨이 진범” 이어지는 전문가 증언…패터슨은 혐의 부인<br />
친구 리 “내 눈으로 직접 봤다”…애타는 부모 “안아주고 싶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12-28 08:07:57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포커스뉴스) 사람이 죽었다.

살인은 1997년 4월 3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일어났다.

피해자 조모(당시 22세)씨는 일을 보고 있었고 그 뒤를 두 남자 중 누군가 혹은 두 남자가 조씨를 덮쳤다.

날카로운 잭나이프(휴대용 칼)가 조씨의 왼쪽 목 4곳, 오른쪽 목 3곳, 가슴 2곳 등 모두 9차례나 침범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두 남자는 도망쳤다.

머리에 피칠갑을 한 아더 존 패터슨(36·당시18세)은 같은 건물 4층으로 올라가 화장실에서 몸과 머리를 닦았다.

미군 아버지를 둔 패터슨은 미군 제8군 기지로 들어갔고 피가 묻은 바지를 친구와 바꿔 입기도 했다.

피 묻은 옷은 불로 태웠고 범행에 사용된 칼은 하수구에 몰래 버렸다.

패터슨은 다음날 익명의 제보를 받은 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됐다.

패터슨과 함께 범행 현장에 들어간 에드워드 리(36·당시18세)도 범행 직후 도망쳤다.

리는 친구들에게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도 했다.

그는 조씨의 피가 묻은 셔츠를 수차례 빨았고 살인이 일어난 5일이 지나서야 검찰에 자수했다.

18세 청소년들이 저지른 살인은 국민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줬다.

잔인한 살인 방법 외에도 살인의 동기가 없는 ‘묻지마 살인’이었고 그들은 상대방이 진범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 검찰은 두 사람을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보지 않았다.

검찰은 리에게 살인죄를 적용했고 패터슨은 증거인멸죄와 흉기 휴대죄만 적용해 기소했다.

‘조씨를 제압할만한 덩치가 큰 사람이 범인이다’는 도검 전문가의 의견이 주요했다.

패터슨은 키가 170㎝ 내외지만 리는 180㎝에 체중 100㎏이 넘는 거구였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쳐 리에게 살인 혐의가 인정되는 듯했다. 1심은 그에게 무기징역, 2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1998년 4월 대법원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같은 해 9월 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증거인멸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패터슨은 실형을 살다 같은 해 8월 형집행 정지로 출소했다. 그는 약 9일 뒤 갑자기 미국으로 출국했다.

담당검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를 제때 연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족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범인이 없었다.

진범이라고 생각했던 리에게는 무죄가 선고됐고 또 다른 용의자 패터슨은 한국에 없었다.

분노한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했고 대법원은 ‘담당 검사의 과실과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사이에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조씨의 부모는 1999년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또다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의 무능과 무기력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씨 유가족이 패터슨에 대해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검찰을 움직인 건 영화였다. 사건의 공소시효를 2년여 남긴 지난 2009년 개봉된 홍기선 감독의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이를 계기로 검찰은 같은 해 9월 미국 당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패터슨이 미국으로 출국한 지 11년만이었다.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수사기관에 붙잡힌 뒤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겨졌고 항소와 상고 끝에 2012년 10월 미국 LA연방법원으로부터 패터슨의 한국 송환 결정을 받아냈다.

검찰도 2011년 12월 살인 혐의로 그를 다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 다시 시작된 ‘이태원 살인사건’…패터슨 ‘혐의 부인’

2015년 9월 23일 16년만에 한국 땅을 밟은 패터슨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친구 에드워드 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가 죽였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유가족들은 고통을 반복해서 겪었겠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것도 옳지 않다”며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0월 8일 열린 첫 재판에서 패터슨은 “에드워드 리가 살인을 했고 당시 마약에 취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리는 평소 과시하는 경향이 있고 남보다 터프한 행세를 하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원한관계나 목적이 없는 살인사건”이라며 “이러한 사건은 마약에 취해 있거나 피의자가 미치지 않는 이상 원인이 발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사건이 일어난 직후 지인에게 웃으며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는 등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실제 가택수사 결과 마약도 압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 “패터슨이 진범이다”…이어지는 전문가 증언

지난달 19일 증인으로 출석한 미군 범죄수사대(CID) 수사관 B씨는 “피해자를 찌른 사람은 패터슨”이라며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했다.

B씨는 이 사건을 처음으로 조사한 수사관이다.

B씨는 사건 직후 참고인 15명을 불러 조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중심으로 증언을 이어갔다.

B씨는 “15명의 증인 모두 패터슨이 버거킹 안에서 사람을 찔렀다고 진술했다”며 “단 한 명만이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그가 바로 패터슨”이라고 말했다.

B씨는 “목격자들은 모두 패터슨이 칼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패터슨은 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부인했다”면서 “그러나 많은 목격자가 그가 칼을 버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고 지적했다.

B씨는 “논리적인 결론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피해자를 찌른 것은 패터슨”이라고 말했다.

부검‧혈흔 형태 전문가도 패터슨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11월 12일 증인으로 이윤성(62) 서울대 의대 교수는 “피가 많이 묻은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며 간접적으로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가 많이 묻었다면 피해자와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범인이라면 온몸에 피가 묻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교수는 “가해자가 양쪽 목을 공격 때는 피가 많이 묻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가슴 정면을 두차례 찌를 때는 두 사람이 굉장히 가까웠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몸이 굽어 바닥으로 향한 상태가 아니라면 피가 많이 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두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혈흔형태분석 전문수사관 이현탁 경위도 “상처와 깊이를 보면 범인에게 많은 피가 묻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피해자는 경동맥이 잘리고 9번이나 칼에 찔려 피를 많이 흘렸다”며 “피해자와 가까이 있었고 많은 양의 피가 묻은 사람이 공격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패터슨의 현장검증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검찰의 의견과 견해를 같이했다.

검찰은 이 교수에게 “패터슨은 현장검증 당시 세면대 오른쪽에 서서 피해자를 밀쳤다는 입장인데 패터슨의 어깨를 넘어 피가 세면대에 묻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경위도 “세면대 상단과 옆, 하단에는 많은 양의 피가 흐른 흔적이 있다”면서 “패터슨이 세면대를 뒤로 두고 피해자를 밀었다면 이러한 형태는 불가능해 보인다”고 답했다.


◆ 법정에서 만난 두 친구…리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살인범’에서 ‘증인’으로 신분이 바뀐 에드워드 리는 “패터슨이 흉기로 피해자를 찌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증인으로 출석한 리는 시종일관 “패터슨이 살인범”이라고 지목했다.

남색 정장을 차려입고 등장한 그는 패터슨에게 눈 길 한번 주지 않았다.

패터슨은 그런 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반박할 부분은 직접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리는 “화장실 세면기에서 손을 씻고 있었는데 패터슨이 화장실로 들어와 대변기 칸을 살폈다. 거울을 통해 봤다”고 말했다.

이어 “패터슨이 갑자기 소변을 보고 있던 조씨를 흉기로 찔렀다. 너무 놀라 돌아섰는데, 패터슨이 계속해 피해자를 찔렀다”고 주장했다.

리는 증인석에서 일어나 당시 흉기에 찔린 피해자의 행동을 직접 재연하기도 했다.

이에 패터슨은 “리는 본인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계속해서 진술을 바꾸고 있다”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군범죄수사대에 선입견을 심기 위해 나를 진범이라고 소문을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가 패터슨을 향해 “진실을 말하라”고 쏘아붙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 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현장 검증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별관 1층에 마련된 세트장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는 재판부와 검찰, 패터슨, 에드워드 리, 혈흔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검찰은 범행이 일어난 햄버거 가게가 사라졌기 때문에 실측 도면 등을 토대로 당시 살인현장과 똑같은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었다.

현장검증은 패터슨과 리가 각각 주장하는 방식대로 재연됐고 체격이 비슷한 대역들이 다시 재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피를 주사기에 담아 분사하는 방법도 시연됐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과 리가 “거짓말 하지마”라며 언쟁을 벌였다고 전해졌다.


◆ 애타는 부모의 마음…“우리 아들 안아주고 싶다”

재판이 중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가장 답답한 사람은 피해자 조씨의 부모다.

거의 모든 재판에 참관한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3)씨는 11월 4일 증인석에 서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씨는 “우리 아들을 죽인 이들은 가족들도 만나고 밥도 먹으면서 돌아다닌다”면서 “우리 아들은 죽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한번만 안아주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내 옆에 우리 아들을 죽인 사람이 있으니 가슴이 떨린다”며 “재판부가 사실을 잘 밝혀 죽은 우리 아들의 한을 꼭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의 아버지 조송전(75)씨도 “나는 이제 눈물도 말라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씨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우리 집안이 망했다”며 “이번 사건 때문에…”라며 말을 한동안 잇지 못하기도 했다.

조씨는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나는 아직도 리와 패터슨이 공범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재판부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이 답답한 것은 가해자들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혐의를 벗은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 이모(61)씨는 모든 재판에 참관하고 있다.

아들의 무고함을 밝히겠다며 수차례 언론과의 인터뷰도 불사했던 그다.

이씨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왜 이러한 사건을 18년간이나 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재판을 통해 국민은 한국 검찰과 경찰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패터슨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기를 바란다”며 “이 사건이 빨리 종결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패터슨 어머니의 상황은 패터슨의 법정 진술로 알려졌다.

패터슨은 “송환 이후 어머니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셨다”면서 “일주일에 수차례 면회를 오신다”고 말했다.

내년 1월 12일 속행되는 재판에는 재판에서 리의 아버지와 패터슨의 친부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2009)' 포스터. 2015.09.23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김인철 기자2015.12.21 정윤경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지난 9월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2015.09.23 오장환 기자2015.12.17 주재한 기자 (인천=포커스뉴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23일 오전 인천 중구 공항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돼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5.09.23 오장환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인 지난 10월 8일 오전 범인으로 지목됐던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 이모씨가 서울중앙지법으로 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2015.10.08 오장환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18년만에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검증이 열리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별관에 당시 사건 현장을 재연한 화장실 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날 현장검증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2015.12.04 허란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인 8일 오전 피해자 조중필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2015.10.08 오장환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4일 오전 서울중앙법원에서 이태원 살인사건의 살인범으로 지목됐다가 무죄를 받고 풀려난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 이모씨가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의 재판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11.04 성동훈 기자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