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명암> ⑤ 정릉, 문화재 보존과 개발 동시 충족 모델?

문화재위 6차례 부결·보류 거쳐 승인…다른 지역에 영향 줄 듯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18 08:10:07


⑤ 정릉, 문화재 보존과 개발 동시 충족 모델?

문화재위 6차례 부결·보류 거쳐 승인…다른 지역에 영향 줄 듯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현대식 건축물이 밀집한 서울 중구 정동(貞洞)의 이름은 조선 왕조 최초의 왕릉급 무덤인 정릉(貞陵)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정릉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정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 1356~1396)가 묻힌 곳이다. 원래 무덤은 정동 주한 영국대사관이 자리잡은 한양 황화방(皇華坊)에 있었다.

성북구 정릉은 조선시대 다른 왕릉이나 왕비릉에 견주어 격이 훨씬 떨어진다. 석물(石物)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신덕왕후가 죽은 뒤에 정적인 태종 이방원이 집권한 탓이다.



이성계보다 먼저 죽은 신덕왕후의 시신은 정동에 묻혔다가 지금의 정릉으로 옮겨졌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에 의해 파헤쳐져 사대부가 수준으로 조성된 무덤으로 이전됐다. 200여년 후인 현종 10년(1669)에야 송시열이 주창해 겨우 왕비 지위를 회복하고 무덤 역시 정릉으로 일컫게 되었다.

정릉의 주변 환경도 좋지 않다. 주택가 밀집지역 기슭에 있는데다가 진입로는 좁은 미로가 전부이다.

요즘은 주변 개발 논란에 휘말렸다. 그럼에도, 정릉은 엄연히 조선왕릉이라는 이름의 세계유산 중 한 곳이고, 국가 사적 제208호다. 각종 개발 행위가 엄격히 제한되는 이유다. 주변 일부 지역에도 개발 잣대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정릉의 경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야 한다.

최근 정릉 주변에서 대규모 개발이 추진되면서 마찰음이 생겼다. 문화재 경관의 훼손 문제 때문이다.



갈등 양상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개발을 반대하고 나선 지역 사회는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재개발 계획은 역설적으로 정릉 주변의 무질서한 경관을 정비할 절호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는 지난 6월 '서울 정릉 주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계획대로 진행하고 재개발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의 적절한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재건축을 해도 좋다는 결정을 낸 것이다.

2010년 10월 이래 무려 6차례나 문화재위에서 부결 혹은 보류를 당한 정릉 주변 재개발 방안이 비로소 확정됐다.



재건축 사업안을 보면 정릉과 인접한 정릉동 506-50 일대 4만9천350㎡에 지하 6층 지상 5~12층짜리 공동주택 23개 동이 들어선다.

문화재 구역과의 거리, 지형을 고려한 공동주택 배치, 정릉 및 인근 흥천사 주변에서 공동주택을 볼 수 없도록 최대한 노력한 점, 문화재와 공동주택 사이에 30m 떨어진 거리를 둔 것을 근거로 재건축을 승인받았다.

문화재구역 인근에 공원을 만들고, 폭 30m의 진입로를 개설하기로 한 계획이 특히 눈에 띈다. 복개 상태인 정릉천을 복원한다는 계획도 호평을 받았다.

재건축 계획이 실현된다면 정릉의 문화재 경관은 그전보다 훨씬 개선될 것으로 문화재위는 기대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8일 "계획대로 된다면 진입로 개설을 비롯한 주변 정비 숙원을 단숨에 풀게 된다"면서 "공사에 앞서 개발대상지 발굴조사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5년간 이어졌다. 재건축조합이 신청한 건물 층수가 높아 정릉 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문화재위 심의에서 잇달아 거부되고 재건축조합이 송사에 휘말린 탓이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거셌다.

정릉 인근 사찰인 흥천사를 중심으로 결성된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은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에 실태 조사를 의뢰해서 약 1년간 현지실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정릉은 문화재 보호를 내세워 지역사회 일부가 개발을 반대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계획안이 문화재 경관을 되레 정비하는 방안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재 관리에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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