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거쳐 남한 정착한 탈북자 1천100여명의 '숨은 대부'

이중렬씨, 해외서 한식당 운영하며 탈북자 도와…폐암 말기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17 07:00:02

△ 동남아 거쳐 남한 정착한 탈북자들의 '숨은 대부' 이중렬씨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1990년대 중반 동남아 제3국으로 건너가 한식당을 운영하며 1천100명이 넘는 탈북자의 남한행을 도왔던 이중렬 씨가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던 중 그동안의 기록이 담긴 사진첩을 보며 웃고 있다. 2015.8.17 toadboy@yna.co.kr

동남아 거쳐 남한 정착한 탈북자 1천100여명의 '숨은 대부'

이중렬씨, 해외서 한식당 운영하며 탈북자 도와…폐암 말기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또 다른 나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남한으로 가기 위해 그의 식당을 찾았다.

90년대 중반 동남아 제3국으로 건너가 한식당을 운영하던 이중렬(70)씨.

그는 식당으로 찾아온 탈북자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워 남한으로 가는 길을 일러줬다.

이씨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부터 5년간 1천1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만나 남한으로 갈 수 있는 다른 도시로 보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비밀스럽게 탈북자들을 지원하느라 주변의 한인들도 그의 활동을 잘 몰랐지만, 그가 간직한 6권의 노트와 두꺼운 사진첩 속에는 그를 거쳐 간 탈북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그의 '숨은 대부' 활동은 지난 2000년 남한의 한 선교단체로부터 "두 명의 청년이 식당으로 찾아갈테니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왔다는 두 청년을 집으로 데려가 재워준 뒤 남한으로 가는 길을 처음으로 찾아줬고, 이후 숱한 탈북자들을 맞았다.

이씨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는지 우리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혼자 오는 사람도 있었고 일행도 있었고,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탈북자는 생후 15개월 된 아기를 업고 왔던 20대 초반의 병약한 여자였다"며 "국경 경비가 삼엄했던 당시 그 애를 남한으로 무사히 보낼 수 있는 루트를 찾으려 내가 직접 다른 나라에 다녀오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떠나기 전 '정말 감사했다. 몇 푼 안 되지만 나와 같은 탈북자를 계속 도와달라'는 편지와 돈을 남긴 탈북자도 있었다.

그는 탈북자들을 넉넉하게 재우려고 방 7개짜리 3층 주택으로 집을 옮겼다.

한명을 먹이고 입혀 다음 도시로 기차를 태워주는 데는 150∼200달러가 들었는데, 자비로 충당하다가 어려워지자 친구들과 종교단체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재정적인 부분도 문제였지만, 북한과 가까웠던 국가에서 그런 활동을 하다가 발각되면 추방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남북한과 해당국의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그가 거주하던 동남아 제3국을 통한 탈북 루트는 완전히 막히게 됐고 그의 탈북자 지원 활동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폐암 말기인 그는 20년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치료를 위해 완전히 귀국했다.

그는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몇몇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잘 살고 있는 걸 보는 게 가장 기분이 좋더라"며 웃었다.

이어 "그들이 남한에 적응해 잘 정착해 살다가 통일이 되면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는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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