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본 광복 70년> ④대중가요 키워드는 '나'-1

연합뉴스 1945~2014년까지 인기 대중가요 276곡 가사 분석
'너' '사랑' 꾸준한 인기…광복 직후 '해방', 1980년대 '밤' '눈물'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11 05:30:14


④대중가요 키워드는 '나'-1

연합뉴스 1945~2014년까지 인기 대중가요 276곡 가사 분석

'너' '사랑' 꾸준한 인기…광복 직후 '해방', 1980년대 '밤' '눈물'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사대문을 열어라 인경을 쳐라/ 반만년 옛터에 먼동이 튼다/ 노동자야 농민아 청년 학도야/ 새 세상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광복된 지 1주일. 광복의 기쁨에 젖은 연예관계자들이 모여 독립의 기쁨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 1945년 8월 22일에 작곡된 '사대문을 열어라'는 광복 이후 처음 발표된 대중가요였다.

70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대중가요는 시대와 함께 하며 발전해왔고 이제는 K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에 한국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연합뉴스는 1945년부터 2014년까지 발표된 대중가요 중 276곡을 선정해 가사를 분석했다. 가사에 쓰인 단어는 7만680개, 총 29만7천875자다.

분석 결과 그동안 한국 대중가요에 가장 많이 쓰인 가삿말은 '나'(4천624회)였다. 이외에도 '사랑'(1천349회) '마음'(515회) '눈물'(400회) 등도 시대와 관계없이 많이 쓰였다.

대중가요는 꾸준히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광복 직후인 1945~1950년에는 '귀국선' '전우' '해방', 민주화운동 시기인 1980년대에는 '우리' '밤' '눈물'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등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 대상곡은 TBC, DBS, MBC, KBS, SBS 등 방송사 가요순위 프로그램, 신문 가요 순위표 등에 등장한 주간·월간·연간 인기가요를 중심으로 선정했고, 자료가 적은 1940~60년대 곡은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 2006), '한국대중음악사'(이혜숙·손우석, 2003)를 참고했다.

연합뉴스 미디어랩은 이들 가요를 10년 단위, 대통령별 단위로 가사를 한 데 모아 형태소 분석을 거쳐 주요 키워드를 추출, 노래에 등장한 빈도를 분석했다.

시대별로는 1945~1950년 12곡, 1951~1960년 39곡, 1961~1970년 102곡, 1971~1980년 139곡, 1981~1990년 142곡, 1991~2000년 158곡, 2001~2010년 115곡, 20112~2014년 19곡이 대상이 됐다.



◇ 가장 많이 쓰인 가삿말 '나' '너' '사랑'

분석 결과에 따르면 광복 직후인 1945~50년을 제외한 1951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 대중가요에 가장 많이 등장한 가사는 '나'였다.'나'는 70년간 발표된 276곡에서 4천624회 쓰였다.

특히 1951년 이후 10년 단위 분석에서 한 번도 1위를 내놓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나'와 같은 의미인 영문 'I'도 이 기간 400회, 'me'도 226회 쓰여 '나'를 화자로 이야기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을 보여줬다.

그 뒤는 '너'(1천665회), '사랑'(1천349회), '그대'(945회)가 이었다.

시대와 관계없이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한 단어는 이외에도 '마음'(521회), '말'(466회), '사람'(418회) 등으로 감정이나 관계와 관련된 단어가 주를 이뤘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시대별로 상황은 달랐지만 노래를 통해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표현해온 것"이라며 "대중가요는 '나'라는 주체를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위안과 위로를 전해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대에 따라 단어의 사용이 달라지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1950년대 대중가요는 '너' 대신 '그대'(21회), '님'(8회)이라는 단어를 썼고 1960년대에도 '너'(9회)보다 '그대'(58회), '님'(29회), '당신'(21회)을 선호했는데 1970년대 들어서는 '당신'(72회), '너'(66회), '그대'(64회), '님'(55회)이 비슷한 빈도로 사용됐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에도 이어졌지만 1990년대 들어 '그대'(235회)보다 '너'(798회)라는 가사가 훨씬 많이 쓰였다.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너'는 각각 516회, 162회 쓰여 167회, 53회 쓰인 '그대'보다 선호됐다.



◇ 50년대엔 '고향'·60년대엔 '노란 샤스'…시대상 반영

70년의 세월 동안 대중가요는 그 당시의 사회상을 정확히 반영해냈다.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가거라 삼팔선', 1947)와 같이 광복 직후 기쁨도 있었지만 실향과 분단, 이별 등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1945~50년대에는 '자유' '귀국선' '달빛' '전우'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너도 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다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 서울'('럭키 서울', 1949) 처럼 희망을 담은 노래를 부르던 가수 현인은 다음 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전우여 잘있거라' 1950)와 같은 진중가요를 불러야 했다.

광복 이후 기쁨도 잠시, 남북간의 갈등으로 전쟁의 기운이 맴돌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쟁 중이던 1950년대 초반에는 고향을 그리워 하고, 멀리 떠난 남편의 무사귀환을 비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고향'(21회), '사랑'(33회), '이별'(12회), '님'(8회), '혼자'(6회)와 같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나타내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이외에도'닐리리'(23회), '차차차'(20회)와 같은 추임새가 들어간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1952년 박재홍은 '물방아 도는 내력'이라는 곡에서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길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라고 노래하며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꿨다.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가 진행되면서 1960년대에는 미군 등을 통해 한국에 유입된 미국 대중문화가 눈에 띄게 영향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드러나고 과시적인 외국어 사용이 이뤄지던 때였다.

'노란 샤스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로 시작하는 '노란 샤스의 사나이'(한명숙, 1961)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 저만/ 데이트에 좀 늦게 가면/ 하루 종일 말도 안해'라는 재치있는 가사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최희준, 1961) 등 사랑을 주제로 한 발랄한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대중가요에 많이 쓰인 단어는 '나'(180회), '사랑'(153회), '마음'(62회), '그대'(58회) 등이었고, '아가씨'(27회), '꽃'(25회), '사나이'(21회) 등의 단어도 자주 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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