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본 광복 70년> ③역대 대통령 화두, 통일·경제-2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11 05:30:13


③역대 대통령 화두, 통일·경제-2



◇ 전두환, '광복' 내세워 정통성 극복 시도

10·26사태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최규하 국무총리는 같은 해 12·12 군사쿠데타 직후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8개월 만에 사임한다.

이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사임 전날인 1980년 8월 15일 낭독한 연설이 유일하다.

최규하 대통령 연설에서는 '우리', '국가', '국민' 다음으로 '사회'가 상위 빈도에 올라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전두환 육군소장 쿠데타로 역사 물줄기가 한순간에 바뀌는 상황에서 최규하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사회 안정'인 것은 당연했다.



그 뒤를 이어 최고 권력을 거머쥔 전두환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했을 때 '광복'(54회) 빈도가 높은 점이 눈에 띈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경 진압에 관여한 전두환 정권은 아킬레스건인 정통성 문제를 '광복' 논리로 극복하려 했다.

"식민 36년이 가고, 또 하나의 36년(1945~1980년)이 흘러간 오늘까지 광복은 미완성"이라고 선언한 다음 "바야흐로 방황과 혼돈의 36년에 종지부를 찍는 시점에 서 있다"고 설파한 1981년 광복절 경축사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군부독재 비판을 받았던 전두환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주주의'(27회)를 가장 많이 언급한 지도자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 노태우·김영삼, '공산' 지우고 한반도·세계 주목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한 5년은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새롭게 바뀌는 과도기였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군부 권위주의가 종지부를 찍었고, 그 이듬해 88서울올림픽 성공과 이른바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호황 속에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세계 속에 웅비하는 자랑스러운 민족이 됐다"는 1989년 노태우 대통령 경축사에도 이런 자신감이 묻어난다.

노태우 정부는 헝가리를 시작으로 공산권 국가들과 잇달아 수교한 데 이어 남북관계에서도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 등을 발표하는 등 대북·대공산권 정책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이승만 대통령 경축사에서 최상위권을 점했던 '세계'가 노태우 시절 다시 최상위권에 등장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잘 나타낸다.

다만, 전자의 '세계'가 공산권을 제외한 자유세계만을 뜻한다면, 후자의 '세계'는 모든 나라를 뜻하는 사전적 의미의 세계에 가깝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공산'이라는 표현도 노태우 대통령 경축사를 기점으로 사실상 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 경축사의 상위 빈도 목록은 '통일'(53회)과 '북한'(58회), '세계'(39회), '남북'(37회), '평화'(36회)로 채워져 있다.



'핵무기'(5회)를 비롯해 핵 관련 용어들을 자주 사용한 것도 특이점이다.

이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과 1994년 3월 북한 협상대표의 "서울 불바다" 협박, 같은 해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북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롤러코스터를 타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던 상황을 반영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대를 모았던 남북 정상회담은 그해 7월 8일 김일성 주석 급서로 무산됐고, 남북관계는 이후 '조문 갈등'으로 다시 냉랭해졌다.

민주화투사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는 문민정부라는 "빛나는 정통성"(1993년 광복절 경축사)을 기반으로 삼고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한반도 문제에 밀리기는 했지만, '민주주의'(16회), '민주'(15회), '개혁'(14회) 등을 통해 경축사에서도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 '개혁' 주창했던 김대중…노무현 열쇳말은 '역사'

"1998년은 전면적인 개혁에 총력을 다하고, 1999년 말까지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김대중 대통령 1998년 광복절 경축사)

1998년 정부 수립 50년 만에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로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는 초유의 외환위기에 따른 IMF 관리체제와 더불어 진행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 경축사에서는 '경제'(70회) 다음으로 '개혁'(68회)이 자주 언급됐다.국정 개혁, 구조 개혁, 정치 개혁, 경제 개혁, 사법 개혁, 재벌 개혁, 개혁 입법, 개혁 정부 등 김대중 대통령의 입에서는 '개혁'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지식정보화 강국 건설을 중요한 국정운영 목표로 삼았던 김대중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다른 대통령과 달리 '정보'가 31차례나 언급된 것이 눈길을 끈다.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축사 열쇳말은 '역사'다.'우리'(198회)와 '국민'(105회)를 제외하면 '역사'를 사용한 횟수가 72번으로 가장 많았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상처', '역사의 진실', '역사의 부조리', '분열과 대결의 역사' 등의 표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노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을 국정 과제로 삼았다.

같은 맥락에서 시대(43회), 과거(14회), 진상(13회), 정리(8회) 등의 단어가 자주 언급됐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기득권'(7회)이라는 단어가 상위 빈도 목록에 포함된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했다.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과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윤태영 전 비서관은 연합뉴스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삼으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 시대 정신, 시대 과제 식으로 '시대' 문제에도 깊이 천착했다"라고 전했다.

막연한 '세계'가 아닌, '동북아'를 47차례나 언급한 점도 중국 본격적인 부상과 동아시아 질서 변화를 지켜본 노무현 대통령 경축사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 일본에 말 아낀 이명박…일본에 비중 둔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의 5년치 원고를 훑어보면, 통상 역대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하던 북한이나 일본과 관련된 단어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명박 대통령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세계'(117회), '대한민국'(82회), '사회'(80회), '경제'(68회), '위기'(59회), '성장'(50회) '발전'(48회) 등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취임 첫해인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운 데 이어, 광복절 경축사 연단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전매특허 구호인 '녹색'(36회)과 '녹색 성장'(25회)을 주창했다.

22차례 언급된 '북한'은 이 대통령이 사용한 경축사 단어 빈도 순위로 따지면 29위에 그쳤다.

일본 과거사 문제는 이 대통령 임기 마지막해에 이르러서야 집중적으로 언급됐다. 취임 첫해 "일본도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라고만 말했을 뿐 4년 내리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관계 과거보다는 미래에 치중했던 이 대통령은 마지막해 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집중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독도를 처음 방문하고 일왕 사과를 요구해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온 직후의 발언이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2편은 일본 문제에 할애된 양이 많았다.



양국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와중에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일본에 대해 원칙적인 강경론을 펼쳤지만, 양국관계 개선 필요성이 다방면으로 제기되면서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나타난 대일 메시지는 다소 누그러졌다.

키워드 '일본'을 직접 사용한 횟수는 12회로 집계됐지만, '고통'과 '상처', '신뢰', '용기' 등 다양한 단어를 통해 에둘러서 일본을 압박했다.

이밖에 '경제'(32회), '정부'(19회), '북한'(19회), '협력'(14회), '대한민국'(23회)을 비롯한 단어들이 박근혜 대통령 경축사에 자주 언급됐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