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첫 '기부 매장'…"꿈과 행복 나누고 싶어요"
비영리재단 재활용매장 차린 치주만 구릉씨…'아름다운가게' 파트너 선정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09 07:01:01
△ 네팔에서 수카워티재단 재활용매장 차린 치주만 구릉씨
(서울=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용답동 아름다운가게 본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네팔인 치주만 구릉(42)씨. 구릉씨는 올해 2월 네팔 카트만두에 수카워티재단을 설립하고 재활용매장을 열었다. 2015.8.9 <<아름다운가게 제공>>
photo@yna.co.kr
네팔의 첫 '기부 매장'…"꿈과 행복 나누고 싶어요"
비영리재단 재활용매장 차린 치주만 구릉씨…'아름다운가게' 파트너 선정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네팔 사람들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잘 대답하지 못해요.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그럴 환경도 아니었죠. 재활용매장으로 제게 꿈이 생겼듯 그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성동구 용답동 아름다운가게 본부에서 만난 네팔인 치주만 구릉(Chijuman Gurung·42)씨는 수카워티(Sukhawati) 재단을 차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카워티 재단은 구릉씨가 다른 멤버와 함께 올해 2월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네팔 카트만두에 재활용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자'란 의미에서 '행복의 땅'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이름을 따와 지었다.
그는 네팔에 들어오는 구호품 중 쓰지 않고 버리는 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 한국의 재활용 시스템을 배우려 아름다운가게를 찾았다.
2009년 10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아름다운가게의 한 물류센터에서 기증받은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며 재활용 매장의 운영 노하우를 익혔다.
그는 이곳 활동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네팔에서는 원래 나눔의 문화가 있는데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며 사라졌어요. 그걸 다시 실현할 방법이 재활용이더라고요."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매장 설립에 나섰지만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2년여간 네팔인들을 설득해야 했다.
네팔에는 1만여개의 NGO가 있지만 제대로 활동을 하는 곳은 소수라고 한다.
"보여주기식 활동을 펼치거나 받은 지원금을 모두 탕진해버려 현지인들은 NGO를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카워티의 매장은 어떻게 현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했죠"
우여곡절 끝에 재활용 매장을 열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에서 과연 기증자가 있을까.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그는 "우리부터 안 입는 옷을 모아보자고 했더니 7명이 100㎏을 가져왔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보관만 하는 물건이 많았던 거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람들이 옷뿐 아니라 직접 키운 과일 열매를 가져오는 등 기증품은 계속 늘어났다.
네팔의 다른 지역에서도 매장을 열고 싶다는 문의가 계속 오고 있다. 그는 늘어나는 기증품을 처리할 새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다.
재단은 지난달 아름다운가게 현지 파트너 기관으로 선정됐다. 누와고뜨 지역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를 복구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재활용 매장을 만들고서 가장 많이 변한 건 여성들의 삶이다.
집에서 소일하거나 성매매로 팔려나가기도 했던 여성들이 재활용 원단으로 학용품을 만들고 기증품을 분류하며 자신감을 키워간다.
그는 "무서워서 사람이 많은 버스도 못 타던 한 여성은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당당히 자신의 일을 소개한다고 기뻐했어요"라며 "미용기술 등을 가진 여성이 재능을 나누고 가게를 열면 더 많은 여성이 일자리를 얻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는 네팔인의 삶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낀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손수레를 끌고 온 할아버지가 10루피(한화 180원)를 주고 옷을 사간 장면도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도 내 돈으로 사서 입을 수 있는 날이 왔구나. 고맙다"고 말했다. 구릉씨는 이 사례를 들며 "항상 누군가 주는 옷만 입고 살던 그에게 이 경험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카트만두에는 물이 부족한 탓에 기증품을 세탁하지 못하고 그대로 판매 중이다.
그는 "죽은 사람의 옷을 입으면 병에 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구릉씨는 "수카워티의 뜻처럼 네팔인들이 직접 물건을 생산하고 나누는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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