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 아파트로 바뀐 대한제국 주영공사 이한응 열사 순국지

유럽 최초 구국외교 현장…공관건물 저소득층 아파트로 변신
안내판조차 없어 …영국 당국에 사적지 지정 신청 착수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8-05 07:00:04

아파트로 바뀐 대한제국 주영공사 이한응 열사 순국지

유럽 최초 구국외교 현장…공관건물 저소득층 아파트로 변신

안내판조차 없어 …영국 당국에 사적지 지정 신청 착수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런던의 서부 도심인 켄싱턴 구 얼스코트 트레보버 로드 4번지.

영국 왕실의 버킹엄궁에서 한달음이면 이를 수 있는 이곳에 자리한 4층짜리 흰색 건물 외관은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구한말 유럽에서 전개된 구국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제국 주영국 공사관 건물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영국 주재 외교관이었던 이한응(1874∼1905) 열사가 일본의 주권침탈에 항의해 자결로 서른한 살의 생을 마감한 바로 그곳이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당시 흔적을 찾기 어렵다. 136년 된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 소형 아파트로 개조됐다. 지금은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하는 공익단체 소유로 36세대가 살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독립된 작은 입주공간이 층층이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 계단과 복도, 벽체 말고는 과거 대한제국 공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상층의 응접실과 식당, 2층의 사무실과 서재 등 공관으로 사용될 당시의 방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이한응 열사가 대한제국 공사대리로서 일과를 보냈던 서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은 콜롬비아 출신 카르멘자 자리미요 씨가 살고 있었다.

집 거실로 들어서자 큰 창을 통해 외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세기 전 한국에서 왔던 그분도 지금 이 자리에서 창밖 풍경을 봤으리라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곳에서 22년째 살고 있다는 자라미요 씨는 건물에 얽힌 한국 외교관의 순국 역사를 최근에야 이웃 주민에게서 들었다면서 "유서깊은 장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공관의 침실로 사용되던 3층과 4층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아파트들로 구조가 변경돼 대한제국의 마지막 주영 외교관인 이한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침실의 위치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영국의 이한응 연구 전문가로 동행한 주영 한국문화원의 폴 웨이디는 "영국 경찰의 옛 검시 자료를 찾아봤지만, 사망장소가 침실이라고만 나와 있어서 침실이 4개가 있었던 건물 내에서 정확한 위치를 고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반 런던은 전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던 제국의 수도로서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다.

이한응은 1901년 공사 민영돈과 함께 3등 참서관으로 런던에 부임했다. 1904년에는 민영돈이 귀국하면서 공사대리로서 혼자 남아 대영 외교를 이끌었다.

그는 러일전쟁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고 일본의 국권 침탈을 막고자 백방으로 외교전을 펼쳤다. 영국 정부에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고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하는 영일 동맹 개정 움직임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권을 상실해가는 약소국의 외교관으로서 자긍심과 독립 의지를 표출할 마지막 방법은 비장한 죽음밖에 없었다.

"오호라. 국가는 주권이 없고 인민은 평등을 잃었구나. 모든 교섭에 관계되는 일에서 치욕을 당함이 끝이 없구나. 진실로 혈기가 있는 인간이라면 어찌 참아내고 감당할 수 있겠는가. 종사는 머지않아 폐허로 돌아가고 민족은 노예가 되고 말겠구나.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 봐야 굴욕만 더 심해질 것이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결정하고 보니 더 할 말이 없구나."

이한응은 비분에 찬 유서를 남기고 1905년 5월 12일 침실 방문 뒤 고리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순국은 민족적 분노를 촉발했다. 이한응의 자결에 이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개한 민영환, 조병세, 홍영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년 뒤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의 자결이 이어졌다.



이한응이 기거했던 유럽 최초의 구국외교 현장이 점점 잊힌 장소가 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매년 한국인 10만명 이상이 런던을 찾지만 도심 한복판의 이 건물에는 대한제국 비운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나 표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가 건물을 사들여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바람직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따른다.

이 건물의 시가는 약 700만 파운드(약 125억원). 그러나 건물을 사더라도 입주자들을 내모는 건축계획이 통과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대안으로 영국 문화재청에 사적지 등록을 신청해 건물 밖에 푸른색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한응 열사의 순국 110주년을 맞아 연내에 신청 절차에 착수해 한국 외교관의 숭고한 희생을 알리는 사적지 안내판을 부착한다는 계획이다.

아파트 주민위원회 대표인 키스 클랜시 씨는 "한 세기 전 이곳에 살던 한국 외교관의 고결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며 "사적지 선정까지 시간이 걸린다면 주민들에게 건의해 건물 화단에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심고 자체적으로 안내판을 세우는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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