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슈바인스학세는 돼지 정강이를 닷새간 소금 물에 재웠다 삶은 뒤 맥주를 발라 구워내는 요리다. 2015.7.30 cityboy@yna.co.kr
이주민이 만드는 맛있는 서울 풍경 ①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이주민이 서울에서 직접 꾸려가는 레스토랑은 하나의 '작은 외국'이다.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아도 현지 그대로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색다른 분위기와 이주민과의 대화 속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이 날로 늘어나면서 이주민 식당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 앉아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작은 여행지 6곳을 찾아 그들의 레스토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 베어린, 품격 있는 독일 정찬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아이스바인(Eisbein), 슈니첼(Schnitzel), 보크부르스트(Bockwurst), 크롬바커(Krombacher)·에딩거(Erdinger) 맥주. 이름만 들어도 '독일'이 떠오르는 독일의 대표 음식이다.
서울에서 독일인이 독일 전통의 방식으로 만든 정찬을 맛보고 싶다면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베어린'만 한 선택은 없을 듯하다. 갈색 톤의 간결한 장식이 인상적인 실내와 잔디와 조명으로 운치를 살린 테라스로 구성된 이 레스토랑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통 독일식 정찬을 선보인 곳으로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어린은 황문희(57)씨와 독일인 남편 마르틴 봉가르드(62)씨,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다비드(33)와 다니엘(33)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 레스토랑이다. 봉가르드씨는 세계적인 물류회사 솅커(Schenker)의 한국 대표를 지냈다.
35년 전 서울에서 황씨를 만나 결혼했고, 한국이 좋아 30년 이상을 서울에서 보냈다. 베어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독일 음식을 먹고 싶어도 갈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독일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메뉴에는 황씨가 결혼 초 독일에서 시어머니에게 배웠던 음식이 많이 포함됐다.
베어린이란 이름도 특별하다. 독일 수도 베를린을 상징하는 동물인 곰을 뜻하는 독일어 '베어'(Bar, a 위에 움라우트)와 베를린(Berlin)을 합친 단어로, 독일 음식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았다.
베어린에서는 독일인 요리사가 주방을 책임진다. 가격대는 다소 높은 편이지만 독일 요리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독일 남부식 족발인 슈바인스학세는 바삭한 껍질과 쫄깃한 속살이 매력이다.
닷새간 소금과 양념에 재워 놓은 돼지 정강이를 삶은 뒤 맥주를 발라 다시 굽기 때문에 돼지 특유의 냄새가 없고 풍미가 깊다. 하지만 삶고 굽는 과정에만 3∼4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하루 전에 미리 주문을 받는다. 베를린식 족발인 아이스바인은 굽지 않고 삶아 육질이 더욱 부드럽다.
피망 소스를 버무린 집시풍 슈니첼은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메뉴다. 소시지도 빼놓을 수 없다. 베어린은 하얀 뮌헨 소시지부터 작고 가는 뉘른베르크 소시지까지 독일 각지의 명물 소시지를 선보인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길 7 서머셋팰리스 1층/문의 www.baerlin.co.kr, 02-722-5622/영업시간 월∼금 11:30∼23:30, 토 11:30∼23:00, 일 휴무/가격 슈바인스학세 9만 6천원, 크롬바커 필스너 200㎖ 6천500원
◇ 떼레노, 이주여성의 꿈을 담은 스페인 레스토랑
종로 북촌에 있는 '떼레노'는 이주여성의 취업을 돕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지난해 11월 문을 연 스페인 레스토랑이다.
스페인, 영국 등지에서 15년간 셰프로 일해 온 신승환(33)씨가 이주여성과 함께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요리를 선보인다.
신 셰프는 "오랜 기간 해외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방인으로서 이주여성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13년부터 오요리아시아에 참여해 조리, 식당 경영, 직원 고용 등 레스토랑 운영 전반을 가르쳐왔다.
스페인 요리는 마늘과 쌀, 향신료, 올리브유를 많이 쓴다. 지역별로 요리의 특색이 뚜렷한 편이지만 대체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떼레노에서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절임 음식인 버섯 피클을 맛볼 수 있다. 팬에 버섯, 올리브유, 마늘, 타임을 넣고 센 불에 볶다가 기름이 버섯에 흡수되면 셰리 와인 식초에 하루 이상 담가 놓는다. 헤레스산 셰리 식초는 산미가 강해 고급 음식에 많이 쓰인다. 이렇게 만든 피클은 채 썬 파, 부라타 치즈와 함께 먹는데 버섯의 상큼함과 치즈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떼레노 메뉴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맛보기 요리'로 구성된 코스 요리가 있다는 점이다. 한 번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겠다는 손님에게 제격이다. 저녁에 제공되는 '메뉴 데구스타시온'(Menu Degustacion)은 떼레노가 제공하는 전채, 메인 요리, 디저트 등 6∼7가지를 코스 형식으로 선보인다.
식사와 함께 스페인산 올리브, 맥주, 와인, 커피를 즐길 수도 있다. 국내에 있는 많은 스페인 음식점이 타파스(작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전채)를 주로 제공하면서 펍 분위기를 낸다면, 이곳은 정찬 레스토랑에 가깝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71/문의 02-332-5525/영업 시간 월∼일 11:00~14:30, 17:30~23:00, 브레이크 타임에 커피와 디저트 가능/가격 버섯 피클 1만8천원, 메뉴 데구스타시온 A코스 5만5천원·B코스 9만원
◇ 타버나 드 포르투갈, 다문화가족 부부가 운영하는 포르투갈 식당
홍대 극동방송 맞은편 골목을 누비다 보면 에메랄드색 외벽이 인상적인 식당이 나온다. 붉은색과 녹색 바탕의 간판부터 포르투갈의 색깔이 선명한 이곳은 지난 2013년 11월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포르투갈 전문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 선술집'이란 뜻의 이 식당은 영국 사보이호텔과 돌체스터호텔 등 유명 호텔에서 셰프를 지낸 포르투갈인 아고스티노 다실바(46)씨와 해외에서 호텔리어로 일해 온 아내 이희라(46)씨가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씨가 1995년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할 당시 실습 호텔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정착한 이들은 포르투갈 음식을 먹고 싶어도 갈 데가 없어서 식당을 직접 차렸다고 했다. 국내 1호 포르투갈 식당은 이렇게 탄생했다.
대표 메뉴는 포르투갈의 전통 샌드위치인 '프란세진야'. 작은 프랑스라는 뜻의 프란세진야는 프랑스의 크로크무슈(햄을 넣은 빵 위에 치즈를 녹인 샌드위치)를 변형한 요리다. 스테이크 고기를 녹인 치즈로 덮고, 7가지 알코올과 토마토로 만든 소스 위에 올려서 낸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이 좋다.
'피리피리 그릴치킨'은 우리나라 양념치킨과 비슷한 포르투갈의 국민음식이다. 포르투갈에서 생산되는 고추 '피리피리'를 발라 오븐에 구워낸다.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밥, 샐러드,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다.
빵(Pao)이란 단어가 포르투갈어일 정도로 포르투갈의 제빵 기술은 세계적이다. 이곳에서는 '빵드아구아'(물을 많이 넣어서 반죽한 빵)와 카스텔라의 원조인 '빵드로', 에그타르트의 원조인 '파스텔 드 나타스'를 맛볼 수 있다.
타버나 드 포르투갈은 현지의 맛을 살리기 위해 향신료는 유럽산을 쓰고, 소스부터 빵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 또 포르투갈 와인과 맥주 슈퍼복(SUPER BOCK)도 제공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13길9 1층/문의 02-3144-4819/영업시간 수∼일 12:00∼22:00, 월·화 휴무/가격 프란세진야 1만6천원, 피리피리 그릴치킨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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