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하이옌' 後 1년8개월…상처 딛고 일어서는 필리핀

태풍이 남긴 교훈…재난 대비·대응시스템 구축 힘써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30 06:40:06

△ 태풍 1년 8개월 지났지만 아직도 집 없는 사람들 (타클로반<필리핀 레이테주>=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태풍 '하이옌'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합숙소 '아뷰카이 벙크 하우스.' 200개의 쪽방 안에 나누어 900여명이 산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제공)

'하이옌' 後 1년8개월…상처 딛고 일어서는 필리핀

태풍이 남긴 교훈…재난 대비·대응시스템 구축 힘써



(타클로반·타나완=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후텁지근한 대기를 뚫고 '왱'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귓전을 때렸다.

곧 이곳저곳의 건물에서 어린이들이 차분하지만 빠른 속도로 걸어나왔고, 크게 두 갈래로 줄을 지어 언덕의 교회와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달 24일 오전 찾은 필리핀 레이테 주 다가미의 한 초등학교. 이곳에선 재난위험방지 활동의 하나로 전교생을 상대로 태풍과 쓰나미 대피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 학교가 있는 지역은 1년8개월 전 몰아닥친 태풍 '하이옌'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집이 무너지는 등 삶의 기반을 잃는 피해를 봤던 곳이다.

이달 20∼24일 유니세프와 함께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돌아봤다.



◇ 태풍 '하이옌' 後…재건 움직임 속 아직 남은 생채기

2013년 11월 타클로반을 비롯한 필리핀 레이테 주 일대에 몰아닥친 태풍 하이옌은 이들의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하이옌은 관측 사상 최대 규모 태풍으로, 당시 건물과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 1만2천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냈다.

41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그 가운데 어린이는 17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유니세프는 집계하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냈던 태풍이 지나간 지 1년8개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이곳은 어느덧 태풍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타클로반 시내는 당시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느 동남아 도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태풍 직후 파괴돼 뼈대만 남았던 타클로반 공항은 튼튼한 콘크리트 건물로 새로 단장했고, 도로 양옆으로 촘촘히 늘어서 있던 이재민 텐트와 희생자들을 임시로 묻은 무덤들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시내에는 술집과 음식점, 소매점들이 즐비했고 가판대 음식 냄새가 풍겼으며 대형 쇼핑몰도 성업하고 있었다. 곳곳에서는 신축 호텔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타클로반 시내에서 차로 5분만 달리니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태풍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아직도 집단으로 거주하는 쪽방촌 '아뷰케이 벙크 하우스'가 나왔다.

다닥다닥 붙은 200개의 쪽방에 900여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태풍 이재민 중에서도 극빈층이다. 하지만 이들 중 조만간 집을 마련해 나갈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안지 유(31·여)씨의 방을 찾았다. 이층 침대와 의자 두 개를 놓으니 꽉 찰 만큼 좁은 방에 다섯 식구가 지내고 있었다.

그는 "이곳 남편들은 어부가 많은데 태풍 이후 다들 바다로 돌아가기를 무서워한다"며 "빨리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생계가 어려워 언제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역시 집을 잃고 이곳에 몸을 맡긴 존 폴(12)군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존은 "태풍이 왔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화가 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며 "학교를 열심히 다녀서 내 집도 짓고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태풍이 남긴 아픈 교훈…재난대비 역량 강화하고 교육 힘써

이들은 태풍 피해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복구에 주력하면서도 태풍이 남겨준 교훈을 실천하는 데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체계를 다지기 위해서다.

필리핀은 지리적인 이유로 태풍과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까닭에 언젠가는 또다시 닥쳐올 대형 자연재해에서 피해를 줄이고 내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레이테 주 일대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NGO)들도 긴급 구호 단계를 지나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등과 협력해 재난 대비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레이테 주는 재해발생 시 전염병 창궐을 막고자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더운 날씨에도 백신과 혈액 등이 상하지 않고 지역 보건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냉장·태양열 발전 시설을 구축했다.

유니세프 필리핀사무소 관계자는 "자연재해에 수시로 노출될 개연성이 큰 지역인 만큼 또 다른 심각한 상황이 왔을 때 더 잘,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필리핀 지역 사회의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국제 NGO들의 목표"라고 말했다.

거리에는 높이별로 노란색과 주황색, 붉은색 등으로 다르게 칠해진 전신주가 눈에 띄었다.

이것은 태풍과 홍수가 왔을 때 주민들이 현 상황이 어느 정도 위험한지 인지토록 하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단계별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지침을 만들어 수시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수위가 60㎝(노란색)에 이르면 대피소 이동 준비를 해야 하고 120㎝(주황색)를 넘으면 대피소로 옮겨야 하며, 180㎝(붉은색)이 되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가 완료돼야 한다.

태풍으로 대부분 파괴됐던 이곳의 학교도 지금은 정상화돼 어린이들은 다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갑자기 엄청난 물이 들어와서 학교가 다 망가졌어요. 저는 그때 정말로 슬펐어요."

다가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데니스 가브리안테(11)군은 하이옌이 왔던 때를 떠올리다 곧 입을 닫았다.

데니스는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흐르는 것을 꾹 참아내고서 "학교에 다시 다니게 돼 참 좋다"며 "수학을 좋아해 어른이 되면 회계사가 되고 싶은데,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뤄 가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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