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동화로 끝나지 못한 '세기의 결혼'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29 05:00:00
동화로 끝나지 못한 '세기의 결혼'
(서울=연합뉴스) 20살 금발 신부는 젊음만으로도 빛이 났다.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32살 신랑은 왕위 계승자로서 자신감이 넘쳤다. 신랑, 신부가 영국 런던 세인트 폴 성당 복도를 행진하자 7.2m 길이의 웨딩드레스 자락이 물결 쳤다. TV 중계로 결혼식을 지켜본 전 세계 7억5천만여명은 신혼부부를 축복했다.
1981년 7월29일 영국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1961∼1997)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유치원 보모 출신의 여성이 차기 영국 왕과 웨딩마치를 올리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전 세계인을 매혹시켰다. 결혼식 당일 런던에는 왕세자 부부의 마차 행진을 보려고 200만여명이 모였다. 외국 방송사들은 결혼식장 주변의 좋은 촬영 장소를 차지하려고 수천 달러 '웃돈'을 내밀었다.
'세기의 결혼'은 동화처럼 끝나지 못했다. 찰스 왕세자는 결혼 전에 커밀라 파커 볼스라는 평민 여성과 사귀었고 결혼 후에도 그녀와 관계를 지속했다. 찰스 왕세자에게 다이애나는 귀족 출신, 성공회 신자 등 왕세자비 요건을 갖춘 상대였을 뿐 애정이 없는 존재였다.
다이애나는 남편의 불륜에 분노했지만 두 아들 윌리엄, 해리 왕자를 키우며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남편과 왕실의 시샘과 견제를 받았다. 다이애나는 1992년 찰스 왕세자와 별거를 선언했고 1996년 이혼했다. 전하(Royal Highness) 경칭은 잃었지만 1천700만파운드(220억원) 가량의 위자료, 두 아들의 양육권, 그리고 자유를 얻었다.
이혼 후에도 대인지뢰 퇴치 운동 등을 이끌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녀는 1997년 8월31일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적을 따돌리려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장례식 추도사에서 그녀를 '국민의 공주'(People's Princess)로 칭하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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