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이끈 '관청' 건물을 들여다보다

서울장소인문학 총서 '한양의 탄생' 출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22 07:30:01

조선을 이끈 '관청' 건물을 들여다보다

서울장소인문학 총서 '한양의 탄생'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의정부란 바로 대신들이 모든 관청을 지휘하고 정치를 관리·감독하는 곳이니 그 중요성은 다른 관서와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과 지방의 사무를 전부 비변사에 맡기고 있다. (중략) 지금부터는 의정부와 비변사를 합하여 하나의 관청으로 삼는다."

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가 1865년 내린 하교다. 비변사가 어떤 기구였기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을까.

1808년 편찬된 '민기요람'에 따르면 비변사는 국방과 재정을 맡는 관리와 암행어사처럼 특별한 관직에 오를 사람을 추천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각종 현안을 정리해 임금에게 보고했다.

문제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비변사를 안동 김씨가 오랫동안 장악했다는 것이었다. 풍양 조씨인 신정왕후는 세도정치의 뿌리가 된 비변사를 혁파하고자 했다.

비변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대로에서 500여년간 자리를 지킨 의정부, 육조와 달리 여러 차례 옮겨 다녔다.

16세기 중반 처음 관청이 생겼을 무렵에는 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 부근에 있었고, 곧 남산으로 이전했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창덕궁 돈화문과 경희궁 흥화문 앞에 각각 청사를 설치했다.

한때 비변사가 궐내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폐지될 때까지 궁 밖을 떠돌았다.

그렇다고 궁궐 안에 관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처럼 왕을 인문학적으로 보좌하는 자문기구는 궐내각사에 두기도 했다.

신간 '한양의 탄생'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었던 다양한 관청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가 엮은 첫 번째 '서울장소인문학 총서'로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 김문식 단국대 교수, 노경희 울산대 교수, 문중양 서울대 교수,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지난해 영화의 소재가 된 상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상의원은 왕실 가족의 의생활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값비싼 직물과 금은보화를 보관하는 보물창고이기도 했다.

또 도성 밖 거주민을 위한 의료기관인 활인서에서는 무당을 통한 주술 치료가 이뤄졌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지만 무당이 내는 세금이 관청 운영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예를 중시했던 조선에서 제사를 총괄한 봉상시,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서책을 간행한 주자소와 교서관, 음률을 주관한 예술의 정점이었던 장악원, 천문학과 지리학을 연구한 관상감, 뛰어난 외국어 실력자들이 모인 사역원의 기능과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글항아리. 316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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