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이쾌대 다시 보기…'해방의 대서사'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근대미술 소장품전도 열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21 15:55:55
△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쾌대 회고전, 한국근대미술 소장품전이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이쾌대 다시 보기…'해방의 대서사'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근대미술 소장품전도 열려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광복 70년을 맞아 한국미술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쾌대(李快大,1913~1965)를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와 국내 근대미술가들을 조명하는 소장품전이 동시에 열린다.
월북 화가, 작품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으로 알려진 이쾌대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한 작가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같은 기간에 열리는 '한국근대미술 소장품'전은 1945년 광복 직후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활동상을 보여준다.
두 전시는 22일부터 시작돼 11월1일까지 이어진다.
◇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그의 50주기이자 광복 70년이 되는 올해 이쾌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꽤 많은 사람에게 그의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1932~2006)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고 소개한다.
그가 지나온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기와 겹친다.
경북 칠곡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이쾌대는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나서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귀국하고 나선 이중섭, 최재덕 등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화가들과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했다.
해방의 감격과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수십 명이 한데 엉켜 있는 '군상-해방고지(解放告知)'를 그려 화단에 충격을 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북한군의 선전미술 제작에 가담하게 됐고 국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북한으로 가고 말았다"고 설명한다.
한국전쟁 당시 만삭이었던 그의 부인 유갑봉 여사(1980년 사망)는 서울 신설동 한옥집 다락방에 남편의 작품을 숨겼다.
1953년 월북 후 남한에선 그의 이름이 금기시되다가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가 이뤄졌다.
성장한 막내아들 한우 씨가 미술품 수복 전문가에게 작품 복원을 맡기면서 1991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월북작가 이쾌대'전이 열렸고 이후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전시에선 1930년에서 1950년 무렵까지 이쾌대가 남긴 그림을 학습기(1929~1937),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는 모색기(1938~1944), 해방 이후 탁월한 역량을 기반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세계를 구현한 전성기(1945~1953)로 나눠 작품을 소개한다.
17세의 이쾌대가 그린 수채화를 비롯해 아내를 모델로 하다가 차츰 조선의 전통 여성상으로 변화한 인물화, 시간이 지나면서 과감한 색면 처리와 밝고 명랑한 색채를 보여주는 작품,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전통의 색채를 결합한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유족이 소장한 드로잉 300여점 중 150여점과 이쾌대가 그린 잡지 표지화, 삽화, '미술해부학', 미공개 아카이브 등 400여점을 선보이고 서양화가 김창열, 조각가 전뢰진 등 제자의 인터뷰 영상도 보여준다.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속 이쾌대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산촌을 배경으로 팔레트와 붓을 들고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쾌대는 한국적 서양화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로 월북화가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동양화적 필선, 안료를 얇게 사용한 기법, 한국 복식에 보이는 색감의 조화 등이 바로 그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한국근대미술 소장품展
청계 정종여(1914~1984)가 무대 뒤편에 태극기가 보이는 궁궐 야외에서 열린 음악회의 한순간을 포착한 '합창단 1',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 등 작가 51명의 작품과 자료를 포함해 128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광복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작가와 작품을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일제 강점기 은거했던 많은 예술가가 광복 직후 세상 밖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펼치고자 했고, 중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 역시 귀국했다"고 설명한다.
한국화 분야에선 일본화 영향으로 간주하던 채색화에서 벗어나 수묵 본연의 전통 회화를 되살리고자 했고 유화 쪽에서는 새로운 조형 이념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여러 지역에서 협회를 결성,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화단을 정비했지만 이러한 활동의 전개 양상은 점차 정치이념, 노선 등과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국립현대미술관은 부연한다.
1948년 정부는 미술계 역시 국가 주도로 재편하고자 했고 한국미술 진작과 미술인 육성을 목적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창설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활동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이 소실돼 1950년대 이전까지 작품이 많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어 지금까지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가 드물었다"고 의미를 뒀다. 문의 ☎ 02-2022-0600.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