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전 구간 248km 민간인 첫 종주 기록
서재철씨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출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21 12:02:16
비무장지대 전 구간 248km 민간인 첫 종주 기록
서재철씨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석곶리 나루터, 사천강, 판부동, 사미천, 천덕산, 야월산. 일반인에겐 낯선 이름들이다. 그럼 다음은 어떤가? 복개평야, 평강고원, 남대천, 백학산, 가칠봉, 서희령. 여전히 막막하다.
이들 산천은 대부분 비무장지대(DMZ)에 놓여 있다. 아니, '갇혀' 있다.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248km의 비무장지대. 그곳은 우리땅이되 우리땅이 아니다. 지독한 모순적 현실. 하지만 부인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이렇듯 깊은 분단과 증오의 상처가 현실로 남아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올해로 분단 70주년을 맞았다. 그 분단의 통절함에 견준다면 광복 70주년의 감격은 잠시잠깐의 찰나였다. 오는 27일은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맺은 정전협정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녹색연합 전문위원인 서재철 씨가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비무장지대 전 구간을 직접 종주하며 보고 느낀 기록과 감회를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가 그것이다. 서씨는 2006년 두 달가량 분단 최일선을 답사했다. 산림청이 주관하고 국방부가 지원한 '비무장지대 일원 산림실태 조사연구' 프로젝트 일환이었다.
비무장지대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참혹한 동족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픔의 땅인가 하면 한반도에서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보고 같은 지역이다. 저자는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서 이들의 모습과 역사, 그리고 감회를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겼다. 비무장지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서씨는 2006년 7월 10일 비무장지대 철책이 세워진 서부 휴전선의 경기도 파주군 장단면 석곶리 나루터에서 종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성동과 판문점, 철원평야, 한탄강, 건봉산을 거쳐 강원도 고성의 동해안까지 걷는다. 휴전선 남으로는 파주시, 연천군, 철원군,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이 이어지고 북으로는 개풍군, 장단군, 평강군, 김화군, 창도군, 금강군이 바라다보인다.
저자는 냉전이 그대로 멈춰 있는 현장이자 60여 년의 정전 동안 남북이 대치하는 교전의 현장을 사진과 함께 생생히 전달한다. 분단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역시 판문점. 이곳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유일하게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양측 군인들이 매일 마주보며 대치하는 곳이다.
비무장지대의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역인 대성동 이야기도 들려준다. 50여 가구 200명 남짓의 주민이 사는 이곳의 대성동초등학교에는 학생 30명이 교직원 21명과 함께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 군사분계선과의 거리는 고작 400m. 대성동 언덕에서 복무중인 미군 장교의 모습은 한반도 현실을 상징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서씨는 각종 사료와 증언을 통해 비무장지대의 역사와 사건들을 들려준다. 현역 군인으로 월북했던 유운학 중령 사건, 민간인으로 남북을 오갔던 김낙중 씨와 임수경 씨 사건,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영공으로 들어갔던 헬기 사건 등이 그렇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전쟁 후 남북의 움직임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코자 노력했다. 전쟁은 남과 북 양측에 강력한 권위주의적 독재체제가 들어서는 기반이 됐다며 "남과 북의 통치자들은 전쟁의 기억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배합해 각자의 정치적 기반과 통치에 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적대적 의존'이다.
남과 북은 특수요원을 상대지역에 침투시킴으로써 정전협정을 스스로 위반한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은 1950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6천446명을 남파했고, 남한은 1951년부터 1972년까지 총 7천726명을 북파했다. 서씨는 "남북 모두 수십 년 동안 비정한 인간병기를 양산해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며 "이런 무리한 작전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반복됐다"고 비판한다. 더구나 "목숨을 내놓고 사선을 오간 이들의 명예는 물론 보상도 국가는 외면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철원평야 북쪽의 평강고원을 바라보며 저자는 온몸이 절로 섬뜩해짐을 느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핵무기 사용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평강고원을 그 투하지점으로 설정했다는 것. 당시 미군이 계획한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그것보다 3배나 위력이 센 것이어서 만약 본래 계획대로 투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 아찔해지는 것이다. 당시 미군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럽과 태평양에서 사용한 폭탄의 양과 맞먹는 22만 t의 폭탄을 한반도에 쏟아부었다.
이처럼 아픈 땅이지만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보고이자 천국이나 다름없다. 지난 60여년 동안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멸종위기의 동식물들에게는 보금자리가 돼주고 있는 것. 예컨대 판부동 골짜기의 경우 동북아의 깃대종인 고라니의 보기 드문 안식처다. 이밖에 반달가슴곰, 사향노루, 산양, 수달, 담비, 하늘다람쥐, 삵 등 국내 대표적 희귀 포유동물이 여기에 모여 살아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간섭이 적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뿐 아니다. 어름치와 묵납자루, 퉁가리, 모래무지, 갈겨니, 쉬리, 열목어 등 수생태계 또한 잘 보존되고 있으며 멸종위기식물인 손나리와 왜솜다리 등도 곳곳의 산언덕에 자생하며 낙원을 연출한다. 특히 비무장지대 대표식물인 솔나리는 양구의 가칠봉과 서희령 사이에 남한 최대의 군락지를 형성한다.
서씨는 "남과 북은 정치적 수사로 항상 민족과 통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현실은 '우리가 과연 서로 같은 민족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국경이 아닌 일시적인 경계선이라고 하기에는 정전의 역사가 너무 잔인하고 비정하다는 것. 저자의 말처럼 한반도 비무장지대 철책선은 전 세계 국경 중 가장 삼엄하다. 그 바로 뒤로 배치된 군사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자는 또 최전방의 군생활의 실상과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북한 인민군의 생활도 멀찍이서나마 살펴본다.
책의 말미에서 서씨는 제안한다. 냉전의 마지막 현장이라는 현실적 가치와 희귀 동식물이 자생하는 생태적 가치 등을 고려해 남과 북 그리고 국제사회가 고민하고 힘을 합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보자는 것. 비무장지대 철책선 순찰로는 산림과 하천, 습지 등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 이어져 있어 국제적 '트레일 코스'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증오와 적대라는 마음의 철책선을 없애며 남북 긴장 완화와 상생 협력 증진의 길이기도 하다.
휴머니스트. 34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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