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왜 그리스 채무 관련해 유로존 밀어붙이나

'원칙 어긴 과거'와 '최대주주' 미국 압력이 배경
대외비 보고서 언론 유출 고의 의혹…이례적 태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17 14:11:35

IMF는 왜 그리스 채무 관련해 유로존 밀어붙이나

'원칙 어긴 과거'와 '최대주주' 미국 압력이 배경

대외비 보고서 언론 유출 고의 의혹…이례적 태도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국제통화기금(IMF)이 제3차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 유로존에 강공을 퍼붓고 있다.

그리스 채무 탕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제금융에 불참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이를 관철하려는 방식도 기존과는 사뭇 다르다.

IMF의 이례적 태도에 독일 등 유로존 매파들은 당혹스러워하며 협상 전략을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IMF의 강공 배경은 무엇인가? 유로존은 왜 당혹스러워하나? IMF 입장은 3차 구제금융 프로그램 후속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보고서 전문 언론에 일부러 유출? = IMF는 지난 13일 그리스 공공채무의 '지속 가능성'을 분석한 대외비 보고서를 유로존 회원국들에 배포했다.

보고서 요지는 '그리스 빚이 너무 많아 경제 정상화는 물론 빚을 갚는 일이 불가능하니 유로존이 대규모 탕감 등의 조처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IMF는 지난달 26일에도 유사한 보고서를 작성, 유로존에 보냈다. 7월 보고서에선 그리스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며 2018년 말까지 필요한 자금지원 규모를 850억 유로로 추정했다. 6월 보고서 추정치(500억 유로)보다 무려 350억 유로 늘어난 것이다.

6월 보고서에서 '대폭적 부채탕감(헤어컷)과 채무상환 만기 20년 연장' 등을 제안한 IMF는 이번엔 '헤어컷과 30년 이상 만기' 연장을 요구했다.

유로존 채권단은 줄곧 그리스의 문제점만 강조하며 부채탕감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의 이런 내용은 채권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IMF 보고서 내용과 행동방식은 1차와 2차 그리스 구제금융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점도 주목된다. 유로존 재무장관이나 정상들의 핵심 협상 직전에 각각 전달했다. 또 불과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관련 내용을 대폭 바꾸며 압력의 수위를 높였다.

보고서 내용이 일반에 전문 공개되고, 부채탕감을 안 하면 IMF가 구제금융에 불참할 것이라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과정도 주목을 끈다.

통상 IMF의 이런 대외비 보고서는 회원국과 유로존 핵심 당국자에게만 배포된다. 설혹 언론에 유출되더라도 일부 핵심 내용만 보도됐다.

그러나 이번엔 일부 언론 매체에 전체 내용이 사본과 함께 보도됐으며 IMF가 바로 공개했다.

유로존의 한 고위관리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비밀보고서 전문 공개는 기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IMF의 이런 행보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IMF 측은 이와 관련해 그리스 채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해온 것이며, 언론이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이후 발표한 것이어서 잘못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전략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IMF가 유럽 채권단, 특히 독일을 비판하는 국제적 여론이 조성되기를 원해 이런 전략을 구사했다는 분석이 있다고 BBC는 소개했다.

채무탕감 요구에 맞서 독일 재무장관이 '한시적 그렉시트'라는 카드를 내놓으며 강수를 두자 이에 IMF가 구제금융 불참을 강조하며 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도 있다.



◇ IMF의 뒤늦은 '원칙 회귀'와 미국의 입김 = IMF의 입장 전환과 강경 태도 배경엔 'IMF가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안팎의 비판과 미국의 입김이 있다.

IMF는 국제 무역안정과 금융통화질서의 '마지막 보루'로 자부해왔다.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엄격하고 체계적인 분석을 한다고 자랑하며 '원칙 중시'를 강조해왔다.

IMF 규정에 구제금융은 '공공부채가 중기적으로 지속 가능할 때'에 제공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2010년 1차 그리스 구제금융 당시부터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IMF 안팎에서 나왔다.

'그리스가 채권단 요구대로 긴축과 개혁조치를 다 이행해도 빚을 갚고 경제를 회생시키기 어렵다'는 실무진 보고를 IMF 지도부가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규정을 비틀어버린 정치적 결정'은 지난 5년간 IMF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

IMF 구제금융 조건이 너무 가혹하고 오류가 많다는 비판과 중국 등의 도전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기준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에 신뢰는 무너져 갔다.

BBC는 이에 대해 "유로존을 뿌리째 흔드는 그리스 위기가 또 다른 대형 국제기구인 IMF에도 유사한 지진효과를 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물론 IMF는 2013년 그리스 부채 평가서에서 1차 구제금융 당시 그리스 경제회복을 너무 낙관했으며 "비록 유로존이 수용하지 않았겠지만 당시에 탕감을 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반성하기는 했다.

그러나 반성을 이번처럼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결국 IMF가 그리스 3차 구제금융과 관련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뒤늦게나마 바로잡고 제 목소리를 내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과거에 대한 반성과 구제금융 대출 관련 원칙 준수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IMF의 '최대주주'이자 지분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그렉시트)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 했다.

그리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으로서 남동유럽의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 반발, 러시아와 손을 잡을 경우 서방이 치러야 할 안보 위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 문제가 악화하면 유로에 대한 달러 가치가 너무 높아지고 유럽 투자 미국 자본 손실 등 경제적 악영향도 우려됐으나 정치적 고려가 더 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나서 그렉시트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유로존은 물론 IMF를 상대로 계속 설득하며 압력을 가했다.

가디언은 IMF의 보고서와 성명 등엔 '미국 재무부의 지문이 도처에 남아 있다"고 평했다.

미국이 유럽에 직접적 압력을 가하면서 동시에 IMF라는 '지렛대'를 사용한 것은 효과를 발휘했다. 독일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일으키는 데도 성공했다.



◇ '사실상 대폭 탕감효과' 낼 방안으로 가닥 =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CNN에 "바로 두 시간 전 그리스 채무 재조정 원칙에 대한 긍정적인 움직임이 독일에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러면서 그리스 채무 재조정이 이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리스의 채무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해 훨씬 많은 채무 탕감과 상환유예 30년, 이자율 인하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IMF 보고서가 배포된 지 이틀 만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독일 등 유로존 매파들은 이후에도 빚 탕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자국 내 반대 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렉시트가 구제금융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여전히 강경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로존 안팎에선 '전통적' 탕감에 반대한다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발언 등 독일 측에서의 반응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

메르켈은 당시 입장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으나 '전통적'이지 않은 탕감 또는 사실상 탕감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도 CNN 인터뷰에서 유로존의 직접 지원이나 원금 탕감은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가능성이 작다면서 유예 기간 연장은 가능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또 "아직 어려운 협상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신임 그리스 재무장관은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파트너들은 채무 구조재조정에 관해선 논의조차 안했다"고 말했다. 이는 IMF 등의 공세에 따른 상황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차칼로토스 장관은 "판단하기엔 이르다"면서도 "30~40일 내 최종 타결이 이뤄지면 그리스에 무엇이 좋은지를 진지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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