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진일보한 한국 뮤지컬 보여준 고선웅표 아리랑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16 17:06:00


진일보한 한국 뮤지컬 보여준 고선웅표 아리랑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조정래'가 아닌 '고선웅'의 아리랑이었다.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을 뮤지컬 무대로 옮겨 공연계 안팎의 기대를 모은 '아리랑'은 조정래의 원작보다는 연극 '푸르른 날에' '변강쇠 점찍고 옹녀' 등으로 유명한 연출가 고선웅의 색깔이 짙게 묻어났다.

전체적으로 공연 수준 면에서는 해외 유명 뮤지컬에 못지않은 수준급 작품이었다. 그러나 대하소설이 대형 창작 뮤지컬로 옮겨지면서 받았던 공연계 안팎의 큰 기대만큼이나 공연 내용에 아쉬움도 있었다.



◇ 책 12권을 2시간40분 공연으로…진일보한 한국 뮤지컬 보여준 무대

잘 알려진 대로 원작 '아리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까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정식 공연이 개막하기 전인 지난 15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프리뷰 공연으로 만나본 뮤지컬 '아리랑'은 공연시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책 12권 분량의 소설 아리랑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감골댁'의 가족을 중심으로 7명의 인물을 삶을 통해 풀어나갔다.

감골댁(김성녀)의 아들 방영근(박시범)과 딸 수국(윤공주·임혜영), 수국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차득보(이창희·김병희)와 득보의 여동생 옥비(이소연)가 있고, 그 외에 양반 출신으로 의병을 이끌며 독립운동을 펼치는 송수익(안재욱·서범석 분), 송수익 집안의 노비 출신으로 일제 앞잡이로 거듭나는 양치성(김우형·카이)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극은 수국과 득보의 사랑 노래로 막을 연다. 두 사람이 부르는 '나는 득보 사랑허재~, 나도 수국이 사랑허재~' 가사의 노래는 처음부터 귀에 감기며 앞으로 펼쳐질 장면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수십 년 역사를 2시간 40분(중간 휴식 포함)에 농축하기 위해 극은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옥비의 아버지는 토지조사사업과정에서 실수로 지주를 죽인 죄로 총살당하고, 일본 앞잡이를 하던 아버지가 의병에게 살해당하자 양치성은 일본에 충성을 다짐한다. 미선소에서 일하던 수국이 감독관에게 유린당하자 분개한 득보는 감독관을 실명시켜 일본 경찰에 잡혀가고, 옥비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따라다니는 감찰국장 고마다의 첩으로 들어가는 등 우리 민족이 만주 땅으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가 1부에서 숨 가쁘게 펼쳐진다.

극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대는 중간 중간 망사막으로 분할됐다 합쳐지며 바닥에 설치된 트레블레이터(평면으로 움직이는 바닥)는 바삐 움직이면서 배우와 소품을 옮긴다.

사실상 등장인물 소개와 당시 역사적 상황을 소개하는데 할애된 1부와 달리 2부는 본격적으로 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운명과 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 강약 조절에서 느껴지는 고선웅 연출의 손길…노래도 인상적

고선웅 연출은 최소한의 세트만으로도 관객들을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암울한 역사 속으로 이끈다.

힘을 줄 곳은 주고 뺄 곳은 빼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이야기 전개는 고선웅의 연출력 내공을 짐작케 했다.

무대 뒤 LED 스크린에 비친 일본 국기를 바탕으로 훈도시(일본의 남성용 전통 속옷) 차림의 남성이 북을 두드리며 등장하고 곧이어 등장한 양치성이 일본군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나 옥비가 고마다의 첩이 되던 때 송수익은 의병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는 광경이 오버랩되는 장면 등은 미국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열리는 유명 뮤지컬에 견주어도 손색 없는 수준을 자랑했다.

마치 한 번에 여러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여러 개로 나뉜 세트를 열고 닫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또한 마치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긴박감을 더했다.

'뮤지컬의 성패는 결국 음악이 결정한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감안할 때 이 작품은 흥행 성공을 기대하게 한다.

앞서 '화선 김홍도', '황진이' 등의 작품으로 한국적 정서를 살린 음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은 작곡가 김대성은 우아하면서도 한국적 정서가 녹아있는 선율로 자칫 구질구질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세련되게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진달래와 사랑', '탁탁', '풀이 눕는다', '어떻게든' 등의 곡은 극 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아리랑'보다 오히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1부 마지막 장면에서 만주로 떠난 우리 민족이 합창하는 '어떻게든'이나 2부 마지막의 '진달래와 사랑'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잔상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였다.

주연급부터 앙상블까지 출연 배우들의 열연은 "모두 의병의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배우 김성녀의 사전 인터뷰 얘기가 무엇인지 느끼게 했다.

특히 김성녀의 60년 무대 경력은 아들 영근이의 환영을 보고 애타게 뒤쫓아가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며 빛을 발했다. 박명성 대표가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그를 찾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방수국' 역의 윤공주의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가창력은 그녀의 연기폭이 서양의 공주 캐릭터부터 한 맺힌 우리네 여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국립창극단 출신으로 소리꾼 '차옥비' 역을 맡은 이소연의 구슬픈 소리는 공기를 가르고 좌석 끝자리까지 뻗어나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앙상블 역시 고른 연기와 노래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민초'라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 고선웅 연출의 색깔 두드러져…호불호 갈릴 듯

아리랑의 방대한 이야기와 달리 정작 무대는 단출했다.

무대 제일 뒤편에 LED 화면에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 때때로 등장할 뿐 꼭 필요한 일부 소품을 제외하면 무대 위에 다른 장식은 전무하다시피해 황량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무대가 오히려 배우의 움직임을 부각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다만 배경의 LED 화면에 비친 영상은 투박하다 못해 일부 장면에선 마치 어린이극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며 몰입을 방해했다.

빠른 전개 역시 속도가 지나쳐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고 해도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쳤다. 이날 공연을 본 한 관객은 "나중에 줄거리는 포기하고 장면 장면만 그냥 이해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한 뮤지컬이라고 못박기에는 창극과 연극의 요소가 비슷한 비율로 많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고선웅 특유의 연출기법을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응이 예상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면 다소 불만을 느낄 수도 있다.

송수익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는 수국과 득보가 웃으며 꽃상여를 타고 가는 마지막 장면은 고선웅 연출이 이 작품에서 추구한 '애이불비'(哀而不悲·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만의 연출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며 그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달 열린 쇼케이스에서도 느꼈지만 웅장한 느낌의 곡들이 계속되면서 클라이맥스에서 정작 감정이 고조되지 못하는 부분도 다소 아쉬웠다.

이 작품에는 총 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막대한 제작비로 다음 달 5일까지 공연 실적이 좋아도 제작비를 건질 수는 없는 구조라는 게 제작사 한 관계자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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