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넘긴 유럽> ① 갈 길 바쁜 EU 앞에 난제 첩첩
그리스 채무조정 변수·브렉시트·난민 문제 당면 현안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14 05:20:00
△ 그리스, 강도높은 '개혁안' 수용
(브뤼셀 AP=연합뉴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16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13일(현지시간) 그리스가 추가 개혁안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와 3차 구제금융 협상을 개시하는 방안에 합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해소됐다.
정상회동에 앞서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는 연금과 부가가치세, 민영화 등의 개혁법안의 입법 절차를 15일까지 끝내면 구제금융 협상을 개시하도록 하는 합의안이 마련됐다. 유로존 정상들은 이에 따라 그리스에 820억~860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하고 ESM 협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필요한 유동성을 지원하는 '브릿지론'으로 120억 유로를 별도로 제공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날 브뤼셀 정상회동 후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왼쪽부터)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인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
① 갈 길 바쁜 EU 앞에 난제 첩첩
그리스 채무조정 변수·브렉시트·난민 문제 당면 현안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그리스 위기가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 합의로 고비를 넘겼다. 유럽연합(EU) 통합에 균열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됐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논란도 수그러들었다. 그리스는 긴급자금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여 실질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위험도 줄었다.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회원국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유럽 경제통화동맹을 향한 불안한 시선들도 누그러들 전망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유로존이 보여준 연대는 유로존 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스웨덴,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에도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위기를 한고비 넘긴 유럽은 경제적으론 경기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시작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는 그리스 불안의 확산을 막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ECB가 애초 시장이 예상했던 수준 이상의 양적완화 규모를 내놓은 것이 그리스 위기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아울러 ECB는 양적완화가 아직은 부족하지만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행히 유로존 경기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회복 속도를 높이면서 1.5%(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추정치)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협상 타결은 유로존 경제성장의 불확실 요인을 하나 덜어내는 의미다.
그러나 유럽이 나아갈 길에는 통합 의지를 시험하는 또 다른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 그리스 해결은 미봉책…채무조정도 변수
이번 그리스 사태 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2011~2012년 2차 구제금융 지원과 민간 보유분 국채 상각으로 일단락된 1차 그리스 위기의 전철을 밟은 모양새다.
그리스가 머지않아 또다시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는 당시의 우려들이 현실화한 것이다. 긴축을 강조한 처방으로는 그리스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긴축이 성장을 훼손하는 만큼 성장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채권단 처방은 그리스 정부채무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표 아래 그리스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선 채무조정을 활용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1차 때에는 민간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를 대폭 상각하는 채무조정을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그리스 경제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6년 내리 마이너스 성장했다. 경제 규모가 2008년보다 25%가량 축소됐다. 빚이 줄어들었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에도 채무조정이 다시 합의됐다. 채권단은 그리스의 채무를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의 경감만 제안하고 원금을 탕감하는 '헤어컷'은 거부했다.
현재 그리스 국채의 70% 이상은 유로존 중앙은행들과 구제금융을 제공한 EU 소속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다. 채무조정이 향후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에 결정적 변수 중 하나가 된다. 각국 정상 입장에선 그리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다독이면서 채무조정을 해야 하는,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을 맞이한 셈이다.
◇ '브렉시트' 극복 과제
아울러 EU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우려와 힘든 싸움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영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EU 협약을 개정하는 것을 사실상 국정과제 1순위로 놓고 있기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협약 개정 협상 결과를 토대로 오는 2017년까지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이 EU 탈퇴 카드를 무기 삼아 EU 지도부와 회원국들에 협약 개정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내 EU 탈퇴 여론을 누그러뜨리고 EU 잔류를 호소할 수 있을 만한 선물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원하는 것들이 EU가 나아가려는 '통합 강화'의 여정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게 문제다.
영국은 EU 역내 이민자에 대한 복지혜택 제한과 일부 정책에 대한 영국의 주권 회복, 향후 통합 강화 조치에 대한 선택적 수용 등을 바라고 있다.
특히 EU 역내 이민자에 대한 복지혜택 제한은 '이동의 자유'라는 EU 핵심원칙과 관련한 사안이어서 험난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영국에 대한 예외 인정이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U 내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마찰음과 불협화음이 쏟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영국과 EU 회원국들 간 EU 협약 개정의 내용은 EU 정체성에 관련한 것인 만큼 EU 미래에 그렉시트보다 더욱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 측면에서 더욱 통합된 공동체를 추구해온 EU와 반대 방향을 향하는 제안들을 꺼내 든 영국이 접점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 난민 문제
그리스 사태에 다소 가려져 있지만, 난민 문제도 EU에 깊은 근심을 안기는 난제다.
잇단 지중해 난민 참사에 EU 정상들이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머리를 맞댔지만, 각국의 반(反) 이민 정서가 만만찮은 탓에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측이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난민 수용 부담을 덜기 위해 EU 회원국이 골고루 나눠 4만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내놨으나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등이 정책 참여 거부권을 내세워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등 일부 국가도 난민 할당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울러 지중해 난민이 더욱 늘어날 수 있어 EU 내 갈등의 골을 키울 우려가 있다. 지중해 난민의 출항지인 리비아의 내전 상황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내전의 틈을 타고 리비아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어 리비아 국경에서 난민 통제의 길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무려 400만명에 달하는 국외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역시 정부군, 반군, IS 등이 뒤엉켜 싸우고 있고, 이라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종파간 분쟁으로 번질 위험도 더해지면서 난민 탈출 행렬이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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