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채무협상 난항 배경엔 '경제이론 충돌'

"양립 불가능한 신고전주의와 포스트케인지언"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13 17:30:26


그리스 채무협상 난항 배경엔 '경제이론 충돌'

"양립 불가능한 신고전주의와 포스트케인지언"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유로지역(유로화 사용 19개국)이 13일 마라톤협상에서 3차 구제금융조건을 타결, 일단은 파국을 막았으나 양측 간의 현실을 보는 극명한 시각차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렉시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 간의 구제금융 협상은 왜 늘 끝 없는 충돌과 설전으로 이어지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양측 주장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경제이론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이를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과 신(新)고전주의 경제학의 충돌로 설명하고 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그리스 시리자 정권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포스트케인지언과온건 마르크시스트 주의자들이 뒤섞여 있다.

반면에 채권국가인 유로그룹의 재무장관들은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에 푹 빠져 있다.

문제는 두 이론이 같은 상황에 대해 180도 다른 정책을 처방한다는 것이다.

포스트케인지언의 경우 그 갈래는 여럿이지만 대체로 1930년대 유명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정립한 학설을 변형한 이론들을 추구한다.

거칠게 말하면 이들은 공공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소비)수요를 늘리는 것을 경기후퇴나 침체 해결책의 기본으로 삼는다.

그리스 사태와 관련해 포스트케인지언들은 "전반적으로 모두의 임금과 연금이 대폭 깎이면 사람들이 돈이 없어 구매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기업 경영난이 악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고 본다.

소득 감소-소비지출 억제-기업도산 증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케인지언 이론에 바탕한 시리자 정권의 정책은 공공재정과 민간소비에 지출할 돈이 있어야, 돈이 돌고 경기가 살아날 수 있으므로 '지나친 긴축'에 반대한다.

시리자 정권도 대체로 기업하기 쉽고, 부패를 줄이고, 징세를 강화하는 등 그리스의 대대적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동의한다.

그리스에 필요한 변화와 관련해 매우 많은 점에서 유로그룹 의견에 동의하지만 추가 임금삭감과 재정감축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한다.

이와 달리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리스 문제의 해결책은 임금비용을 낮추고 연금을 비롯한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국제경쟁력과 투자자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소 단순하게 핵심을 설명하자면 신고전주의 이론은 모든 경제활동은 가격과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되는 '자가균형시장, 즉, 완전경쟁시장을 상정한다.

예컨대 어떤 상품(서비스)의 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질이 비슷한 다른 싼 상품을 선택하므로 결국 경쟁력 있는 제품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경쟁' 시장체제에선 노동력도 마찬가지여서 실업자는 자신의 노동 가격을 충분히 낮춰야만 누군가 그의 노동시간을 구매해 실업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고전주의론자들은 최저임금제도가 노동시장의 '자가균형'을 깨뜨려서 오히려 완전고용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유로존을 비롯한 각국 경제부처와 기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럽중앙은행(ECB) 관료의 압도적 다수가 신고전주의 경제이론 하에서 교육 훈련을 받아왔다.

유로그룹의 정책 처방이 임금과 재정지출 삭감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이유다.

'임금이 낮아지면 노동 수요는 늘어난다. 따라서 그리스 경제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선 임금삭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게 이들의 기본 생각이다.

게다가 공공재정 감축은 공공부채 부담과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을 줄이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세금도 낮출 수 있어 투자자 신뢰를 높인다는 것이다.

공공재정을 줄이면 소비자와 투자자에게도 더 많은 돈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 같은 논리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리스 관광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리스 여행상품 가격이 싸지고, 북유럽 관광객들이 터키나 크로아티아 대신에 그리스를 여행지로 택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킹스턴대학교 경제·역사·정치대학원의 경제학 교수 스티브 켄은 "그리스 관광산업 노동자들은 단순한 생산자가 아니라 동시에 소비자인 측면을 봐야 한다"면서 "모든 사람의 임금을 깎으면, 돈의 유통량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그의 연구 분야는 국가 경제의 민간 및 공공부채 부담과 실업률·국내총생산(GDP) 간 상관관계다.

켄 교수에 따르면, 부유한 사람들은 수입 대부분을 저축하고 소비에 쓰는 돈의 비중은 작아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은 수입 대부분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소비자이자 생산자 역할을 하며 중산층은 경제의 실질적 중추 역할을 한다.

이는 공급과 수요의 두 측면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의 전통적 이론 대립이나 최근 한국에서도 벌어진 논쟁의 초점 중 하나인 소득주도 경제성장론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그리스 상황에서 국내 총수요 위축 효과를 고려할 때 '임금과 재정 디플레'의 장점보다는 문제점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시리자 정권의 시각이다.

게다가 그리스의 산업구조는 독일 등과 달리 수출 중심의 경제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3이 국내소비에 의존한다.

임금삭감으로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소득이 증대되는 선순환 효과는 사실상 유일한 '외화벌이 수출산업'인 관광업에만 적용될 수 있다.

시리자 정권이 임금과 연금 추가 감축에 반대하는 이유는 사회적 평등을 강하게 추구하고 유권자를 의식해서 뿐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경제관과 상황 분석 때문이다.

비록 IMF가 자신들의 '지나친 긴축 일변도 정책'의 문제점을 일부 시인한 바 있으나 유로그룹 등의 현실적 권력과 이론적 배경을 고려할 때 시리자 정권의 주장이 승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유로그룹 등이 내린 처방이 종국적으로 그리스 경제의 회복에 도움을 줄지 또는 해를 입힐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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