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 깨부순 학생들에게서 교육 미래를 보다
한민고 창의융합교육 성과 모은 '허생전을 파하다' 신간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10 11:50:08
'허생전' 깨부순 학생들에게서 교육 미래를 보다
한민고 창의융합교육 성과 모은 '허생전을 파하다' 신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한낮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2014년 초여름의 어느 저녁. 경기도 파주 소재 한민고의 교직원 관사엔 일과를 마친 교사들이 하나둘 돌아와 삼삼오오 자리했다.
군인 자녀들을 70% 받아들이는 기숙형 학교인 한민고는 이제 1학년을 받아 갓 개교한 상황. 교사들까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흔치 않은 방식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시기였으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의욕만큼은 뜨거웠다.
"이제는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보다 기존 지식을 어떻게 융합하고 활용해서 문제 해결책을 찾느냐가 중요하지요. 우리 학생들에게 이러한 문제 해결력을 길러줄 수 있는 수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6년차인 역사 전공 천왕성 교사는 당시 누군가가 한 이 같은 말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날의 격정 토론은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졌어요. 피곤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열정 가득한 눈빛만은 빛났죠.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방 안 공기를 가득 메웠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두근거림이 잊혀지지 않아요."
한민고의 융합수업이 탄생한 계기였다. 60여명의 교사들은 일사천리로 창의융합 수업 방식에 대한 실제적 고민에 착수했다. 하나의 주제를 던져 각 교과별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며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를 유도하는 기본 방식이 정해졌다.
실제 지난해 2학기 박지원의 '허생전'을 주제로 한 융합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한민고는 지난 겨울방학을 맞아 이 같은 성과를 발표하는 '창의융합대회'를 개최했다. 창의융합팀에 속한 학생 88명이 22개팀을 이뤄 주제 발표를 했다. 그 성과는 지상사를 통해 '창의융합교실 허생전을 파하다'란 책으로 엮여 오는 20일 공식 출간된다. 추천사를 쓴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고 평했다.
학생들이 내놓은 허생전에 관한 발표 내용들은 흥미로움을 넘어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자유로운 통섭과 상상력의 발휘는 통념의 궤를 벗어나 학문의 경계도 종횡무진 넘나든다. 허생전의 매점매석 행위와 도적 떼를 이끌고 빈 섬으로 갔던 행위 등이 조선시대에 실제로 가능했는가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가 하면 서술된 허생의 생활습관을 토대로 그의 건강 상태를 유추한다.
우리 고유의 벼품종은 허생이 찾아간 무인도 기후에 적합하지 않다며 유전자 조작 방법을 동원해 소설속 식량이 될 법함직한 '허생벼'를 유전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의 서술 또한 인상적이다.
물론 논리적 비약과 억지스러운 융합의 시도로 느껴지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면 또 어떤가! "허생전은 매우 허황된 이야기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내세웠기에 풍자는 더욱 통렬하게 다가온다"는 학생들의 평가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최 교수는 "진리의 심연에 이르려면 깊게 파야 하고, 그러자면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평생 동안 파도 표면조차 제대로 긁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나는 이것이 바로 통섭을 해야 하는 무식하리만치 단순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민고 교사들은 매년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교과융합식 창의교육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울타리 멘토 프로그램을 정규 수업에 도입하는 등 다양한 융합교육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민고가 도입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 방식은 우리 고등학교 교육 현실에선 아직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천 교사는 "설립한 지 얼마 안돼 교사들의 의욕이 높은데다가 교사들 또한 기숙생활을 하는 독특한 구조가 새로운 교육 실험을 이끌고 가는 기반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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