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새고 화장실 얼어도…" 할머니들의 늦깎이 공부 열정
조희연 서울교육감 문해교육단체 학생·교사 간담회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7-04 09:30:00
"비 새고 화장실 얼어도…" 할머니들의 늦깎이 공부 열정
조희연 서울교육감 문해교육단체 학생·교사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너무 가난해서 학교는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예순 살이 되어 한글을 처음 배우니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
지난 3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의 조희연 교육감 집무실 옆 회의실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60∼80대 할머니들이 삐뚤빼뚤 손으로 눌러써온 편지와 시를 낭송했다.
"아들이 학교를 가면 예쁜 가방을 사준다고 했다. '이제 글을 배워서 뭘 하려고!' 아들한테 화를 냈다. 일 년이 훌쩍 넘어갔다. 개근상을 탔다. 다음 한 해가 홀딱 또 넘어갔다. 아들은 예쁜 가방을 사오지 않았다. (중략) 이제는 내가 가방을 사기로 했다. 아들아 고맙네."
'푸른사람들'이라는 공부방에서 한글을 처음 배운 서남순 할머니가 자작시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소녀 같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조희연 교육감은 "예쁜 가방을 사오지 않은 아드님을 제가 혼내드려야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행사는 조 교육감이 성인 문해교육 기관의 학생과 교사들을 초청해 지원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했다. 젊어서 못 배운 한이 가슴에 쌓인 탓인지 할머니들은 웃다가도 이내 눈물을 훔치며 복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못 배웠는데 늙어서 초·중학교 졸업장을 땄어요. 학교가 낡아서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엔 화장실이 얼어요. 교육감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계속 배우고 싶어요."
한 할머니는 "겨울에 난방비가 모자라 학생들이 기름 값을 모아 내고 있어도 배움의 즐거움을 꺾지 못한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생업에 종사하다 학습 시기를 놓친 장·노년층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크지만 문해교육이 사회적 관심사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관심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참석자들은 토로했다.
'푸른사람들'의 문종석 교장은 "어머님들이 배움의 기회 박탈이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것처럼 이렇게 자꾸 눈물을 흘리신다"며 "일반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예산의 1.8% 수준만 성인문해교육에 투입되는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냐'는 식의 차가운 시선은 문맹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더욱 빼앗고 있다. 학력인정기관에서 초등과정을 마친 뒤 중등과정에 진학해서는 과목 수가 급증하고 과정의 난도가 급등해 제대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초등과정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 노력 끝에 중등과정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도 채 지나지 않아 중도에 탈락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날 할머니들은 성인 문해교육 대상자들을 위해 중등과정을 좀 더 쉽게 편성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서울교육청은 2011년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초등학력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교육청은 초등·중학 과정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작년 48개 기관에서 올해 64개 기관으로 확대 지정할 계획이다.
이날 조 교육감은 참석자들로부터 시화액자와 문집 등을 선물 받고 "예산 지출에는 우선순위가 있게 마련이지만 여러분의 의견을 최대한 고려해 다각적인 문해교육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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