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3천명 살해뒤 '게릴라'로 조작…"군 수뇌부도 알았다"
HRW, 콜롬비아 사건 보고서 발표…전과 독촉받자 범행뒤 승진·휴가
하위장교와 병사들만 800명 처벌…증인 살해 등 수사방해까지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25 18:04:32
△ 2004년 발생한 가짜 게릴라 살해 사건 현장. 희생자 2명이 쓰러져 있고 멀리 군인들이 보인다. 콜롬비아 정부 조사단이 찍은 이 사진은 콜롬비아 검찰의 수사기록에 들어있다. 출처: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민간인 3천명 살해뒤 '게릴라'로 조작…"군 수뇌부도 알았다"
HRW, 콜롬비아 사건 보고서 발표…전과 독촉받자 범행뒤 승진·휴가
하위장교와 병사들만 800명 처벌…증인 살해 등 수사방해까지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50년간 정부군과 반군간 내전으로 20만명이 희생된 남미 콜롬비아에서 정부군이 반군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던 지난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게릴라들을 상대로한 전투에서 '긍정적인(positive)' 결과를 내놓으라는 상부의 독촉에 한 일선 중대가 주둔지 마을에서 민간인 5명을 납치, 농장에 2주동안 감금했다가 중대장 지시로 옷을 위장복으로 갈아입히고는 모두 총살했다.
중대장은 총탄에 얼굴이 뭉개진 것을 보고 일반적인 전투 상황에 맞지 않는 총상이라고 생각했는지 짜증을 냈지만, 이들의 주검 위에 파손된 무기들을 올려놓도록했다.
이어 중대장은 게릴라 20명과 전투를 벌여 그중 5명을 사살했다고 사령부에 '전과'를 보고하고, 그날 오후 대대장, 여단장과 육해공군 합동특수군인 오메가(OMEGA) 사령관이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중대원들을 격려하면서 가져온 닭고기와 담배는 물론 즉석에서 45일간의 휴가를 내줬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24일 발표한 콜롬비아 정부군의 무고한 민간인 살인 행위들에 대한 검찰 수사 상황관련 보고서에 들어 있는 사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짜 전과(false positive)' 살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살인행위로 인한 희생자가 3천명이 넘고, 지금까지 800명의 군인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가짜 전과(false positive)'는 허위양성이라고 하여, 의료시약 검사 등에서 본래 음성인데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경우를 일컫는 전문용어이기도 하다.
HRW가 이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은 콜롬비아의 현 군 최고수뇌부를 비롯해 당시 많은 고위 장교들이 일선 부대에서 빈발하고 있던 이런 일들을 계획하고 지시·조장했거나 최소한 알았고 알았어야 해 적어도 지휘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소수 하급장교와 다수의 하사관, 병졸들만 처벌받고 있다.
이 단체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검찰 수사 자료와 기록, 증인들의 증언, 통화기록, 검사, 증인, 희생자 가족과 그 변호인 등과 면담 기록 등을 종합해 이 보고서를 만들었다.
콜롬비아 정부군의 이런 만행은 지난 2008년 소아차 사건에 관한 언론보도로 콜롬비아에서 공분을 일으켜 당시 국방장관이던 후안 마누엘 산토스 현 대통령이 장성 3명을 포함해 군 고위지휘관 다수를 해임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UNHCHR)가 2004년부터 2007년사이에 콜롬비아에 대한 연례보고서마다 이런 만행들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위 장교들의 책임 문제도 거론했었다고 HRW는 지적했다.
현 군수뇌부가 상부의 전과 독촉과 승진, 휴가, 있지도 않은 가짜 제보자에게 지급되는 현금 등의 보상 유혹에 의해 자행된 이런 만행을 당시 몰랐다고 발뺌하고있지만, 증인들의 증언이나 정황상 그럴 리 없다는 뜻이다.
HRW의 보고서는 특히 후안 파블로 로드리게스 현 콜롬비아군 총사령관과 하이메 라스프리야 육군사령관을 지목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최소 76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여단의 여단장을 맡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산토스 대통령은 두 사람이 법무부에 문의한 결과 자신들에 대해 아무런 공식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게 없음을 확인했다며, HRW가 증거도 없이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변호하고 나섰다고 AP 통신이 25일 전했다.
올해초 콜롬비아 법무부는 장성 10여명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HRW는 말했다.
HRW 보고서는 검찰의 사건 수사가 군의 비협조로 진척이 더딘 점과 여전히 수백건의 사건을 군 검찰이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지 않은 채 축소·은폐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지난해 죄를 자백하고 상관들의 개입 혐의에 관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던 군인이 군 영창에서 살해되고, 2013년 역시 상관인 소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군인의 부인이 괴한들에게 성폭행당한 일 등을 제시하며 증인들에 대한 살해와 온갖 위협을 통해 수사를 방해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특히 콜롬비아 정부군과 반군간 평화협정에서 내전중 있었던 양측간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도록 돼 있으나, 가짜 전과를 올리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에 이 조항이 적용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검찰국도 현재 콜롬비아의 "가짜 전과" 살인 사건 처리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며, "진정한 조사, 처벌 의향이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는 판단이 들 때 ICC 차원의 조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HRW의 보고서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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