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원작 소설가가 말하는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손아람 작가, 대담 인터뷰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24 13:52:53


영화감독과 원작 소설가가 말하는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손아람 작가, 대담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24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과 2010년 출간된 소설 '소수의견'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영화 '소수의견'을 보면 이 영화의 힘은 탄탄한 원작 소설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소설 '소수의견'을 읽고 나면 이렇게 복잡한 소설을 영화로 매끈하게 풀어낸 점에 감탄할 만하다.

영화를 보면 소설이, 소설을 보면 영화가 궁금해진다.

개봉을 앞두고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를 만든 김성제(45) 감독, 소설을 쓴 손아람(35) 작가와 마주 앉았다.

김 감독이 들고 있는 소설책은 손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고시생 공부 책' 수준으로 마킹 테이프, 형광펜 자국을 품고 너덜거렸다.

그는 열살 연하의 손 작가로부터 영화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시나리오 최종본이 나왔을 때도, 영화 편집본이 나왔을 때도 손 작가에게 가장 먼저 보였다.

손 작가는 영화화 작업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그가 '형'이라고 부르는 김 감독의 설득에 넘어갔다. 각본이 진행되며 애착도 커졌고 의견 충돌도 많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감독의 선택이 좋았다고 인정했다.

김 감독은 '간첩 리철진', '피도 눈물도 없이', '혈의 누' 프로듀서 출신으로 이번이 연출 데뷔작이다. 손 작가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디 마이너스'를 썼다.

'소수의견'은 도심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 현장에서 숨진 16세 철거민 가정의 소년과 20대 젊은 경찰관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 드라마다.



-- 두 분은 언제 만나 가까워졌나.

▲ 책이 2010년 4월에 나왔고 6월에 형이 영화 판권을 사겠다고 연락해 만났다. 영화화 제안이 많아 만났던 분들과 달랐다. 판권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게 얼마만큼인지 그런 걸 묻더라. 한참 얘기하다가 사겠다는 얘기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렸다. (작가)

-- 감독님 '밀고 당기기' 한 건가.

▲ 프로듀서 오래 하면서 캐스팅 많이 해보지 않았나.(웃음) 나는 이 소설이 장르물이라고 생각했다. 존 그리샴의 법정드라마와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다루는 주제가 어려운데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는 그런 얘기를 했다. 연출 경력이 없는 나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안될 일을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감독)

-- 결국 뭐가 마음에 들어 감독을 선택했나.

▲ 그동안 해왔던 영화들. 이야기 뒤쪽에 정치성을 깔았는데 잘못 만들면 정치적인 캠페인이 되기 쉽고 신파가 될 수도 있었다. 장르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건조하게 눌러주는 톤이었으면 했는데 그런 영화들을 만들었더라. (작가)

-- 영화화하면서 원작을 얼마나 걷어냈나.

▲ '소수의견'의 가장 큰 질문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야심 찬 주제다. 그걸 다루는 데 소설에서는 법학자들의 세계가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나는 폭발력 있는 법정극을 만들고 싶었다. 거기서 법률가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가 더 넓은 세계를 다뤘다면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감독)

-- 시나리오 작업에서 서로 부딪힐 일이 많았을 것 같다.

▲ 초고는 내가 1차로 썼다. 그리고 감독님이 그걸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이견이 많아 많이 싸웠다. 감독이 연출자니까 결국 감독의 선택대로 갔고 나는 미심쩍어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감독의 취사선택이 노련했다. (작가)

-- 이견은 어떤 부분에서 많았나.

▲ 내 유머가 언어 쪽이라면 감독의 유머는 상황 쪽이다. 내 대본은 언어로 된 유머로 가득 찼는데 그게 없어진 거다. 가장 격렬하게 부딪힌 장면이 박경철이라는 의원이 시위 중간에 쓰러지며 외치는 과장된 연기를 하는 거였다. 그게 감독의 유머인데 정치를 지나치게 희화하는 것 같았다. 결국 감독 뜻대로 갔는데 영화를 보니 '아, 이거였구나' 싶었다. (작가)

▲ 기본적으로 손 작가가 나보다 지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머는 생활인의 느낌이 중요했다.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다. 작가는 혼자의 작업이고 영화는 함께 하는 작업이다. 그게 배우일 수도, 카메라일 수도, 날씨일 수도 있다. 만드는 순간 생기는 생명 같은 게 있다. 영화는 발견하는 창작이고 발견되는 순간에 최대한 여지를 갖는 게 좋은 연출자의 태도인 것을 프로듀서로서 보면서 몸에 밴 거다. (감독)

-- 원작 소설가가 각본 작업에 꼭 참여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실제로 관여하지 않는 작품이 많고.

▲ 내가 빠지기를 원했다.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전문적인 부분이 많아 내가 아니면 하기 어렵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지 않나. (작가)

▲ 나는 미장센을 해야 하는데 작가가 미장센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만약 손 작가가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으면 대판 싸우고 안 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이 청년이 좋았다. 내가 존중해야 하는 원작 작가로서가 아니라 30대 청년 손아람이. (감독)



-- 두 젊은이가 죽은 사건 당일을 그린 장면이 영화와 소설의 큰 차이다.

▲ 피고인 박재호의 회상으로 사건 장면이 등장하는데 내가 생각한 그림은 박재호가 망루에서 밖을 내다보면 그를 기자들이 바라본다. 나는 사회의 시선을, 감독은 박재호의 모습을 원했다. 감독님은 인물에 집중하는데, 나는 개인이 아니라 종(種)으로서 인간을 쓴다. (작가)

▲ 나는 반대로 개인을 다루고. 영화를 볼 때는 쉽게 따라갈 스토리와 리듬감이 필요한 거다. 영화가 지나가고 남는 건 대사 하나, 장면 하나일 수 있다. 비극성을 서사 안에서 강조하는 게 아니라 장면 안에서 비극을 기억하게 해야 했다. 이야기의 공통분모를 지키면서도 매체적 변화는 내가 할 일이었다.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 '소설을 잘 옮겼다'는 것이고, 나 역시 원작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면도 있었다. 첫 번째 편집본도 제일 먼저 손 작가에게 보였다. (감독)

▲ 형은 오랫동안 이 영화만 들여다봤기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게 있고 불안해했다. 2013년에 장면장면 갖다 붙이고 음향, 색보정, 아무것도 안된 편집본을 보여주기에 '이대로 극장에 걸어도 올해 나온 영화 중 5편 안에 들 거야'고 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작가)

-- 인물의 변형과 캐스팅은 어땠나.

▲ 변호사 윤진원(윤계상)과 장대석(유해진)은 소설에서 상상하지 못한 배우를 캐스팅해 영화적 변형을 거치며 장단점을 취했다. 공수경 기자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100% 진일보했다. 홍재덕 검사는 내가 쓰면서 상상했던 그대로 뽑혀 나온 인물이다. (작가)

▲ 다른 인물은 이름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공 기자만 바꿨다. 선언적인 뜻이었고 작가가 섭섭해하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유가 있어서였지 내 것 만들려고 바꾼 게 아니다. 기자는 이 영화에서 법률가와 동급의 위치에 있다. 시대정신이란 걸 법률가는 법률 안에서 고민하지만, 기자는 법률 밖에서 한다. 이 이야기에서 변호사, 기자, 검사는 모두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 확신이 바르든 비뚤어졌든. 그 입장 차를 통해 사회적 공기를 보여주는 거다. (감독)



-- 윤진원과 공수경의 관계가 영화에서 무색이라면 소설에서는 미묘한 남녀의 감정이 있다. 보통은 원작에 없던 연애담을 영화에서 만드는데 반대다.

▲ 열혈 사회부 여기자라는 클리셰를 돌파하면서 성역할까지 주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만약 둘의 관계를 연애로 풀었다면 손 작가처럼 아기자기하게는 못 하고 차라리 불 같은 하룻밤을 건조하게 그렸을 거다. (감독)

▲ 그러면 나는 화를 냈겠지.(웃음)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두 명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연애 톤이란 껍데기를 씌운 거다. 하룻밤으로 했으면 정말 화냈을 거다. (작가)

▲ 아, 그 하룻밤이 어떻게 나왔을지 장담하면 안 된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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