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바뀐 지하철역명'…졸속행정에 우즈베크 주민 분통
당국 "옛소련 잔재 청산"…여론 "주민편의 무시" 비난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22 19:14:09
△ (연합뉴스 DB).
'밤새 바뀐 지하철역명'…졸속행정에 우즈베크 주민 분통
당국 "옛소련 잔재 청산"…여론 "주민편의 무시" 비난
(알마티=연합뉴스) 김현태 특파원 = 눈꺼풀이 무거운 아침 출근길. 지하철 이용객 대부분은 내릴 역 확인을 눈보다는 안내방송에 맡긴다.
그런데 어느 날 늘 내리던 역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면, 승객들은 아마 지각 걱정보다는 황당함이 먼저일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벌어졌다.
영국 BBC는 22일(현지시간) 타슈켄트 당국이 시민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지난주 2개 지하철 역의 이름을 바꿔 현지에서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당국은 예고 없이 하룻밤 새 역 이름을 바꿨으며 이를 알지 못하고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에 지각하고 중요한 약속에 늦어지는 등 적잖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이후 항의와 비난이 빗발치자 "옛소련의 아픈 잔재를 지우기 위함"이라고 뒤늦게 변명했다. 역명이 바뀐 두 곳은 과거 친(親)소련 인사들의 이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유명 지질학자인 하비브 압둘라예프와 유명시인인 함자의 이름으로 각각 변경됐다.
반면 주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현지의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역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더 유용한 일을 해야 했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차라리 지구 상의 모든 이름을 다시 짓자"등의 조롱이 잇따르고 있다.
아울러 새로 바뀐 역명에 대한 적합성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유명시인인 함자는 그의 문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받지만, 소련시절 이슬람교를 배척하던 정책에 동조하며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식 의복 몰아내기 운동'에 앞장서 비난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바뀐 역명이 오히려 더 소련의 아픈 잔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지의 비판적 유명 블로거인 아부 이슬람은 역명 변경이 당국의 졸속행정이라고 꼬집으며 "우리 할머니들의 옷(이슬람식 의복)을 벗기려던 자의 이름은 당장 지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은 이후 지금까지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권좌에 있다. 그는 인권 및 야권탄압 등의 철권통치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는다.
카리모프는 집권 초기부터 탈(脫)러시아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앞서 그는 소련시절의 기념비와 기념일 등을 없애고 자국어인 우즈베크어의 표기법을 러시아식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꿨다.
그러나 카리모프의 무리한 정책추진은 그동안 주민들의 반발을 사왔다. 세계강국의 일원이던 소련시절에 대해 자부심을 간직한 주민들은 당시의 잔재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유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지에서는 이 같은 자긍심에 대다수가 여전히 키릴 문자를 사용하며 로마자는 외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는 이번 역명 변경 또한 주민편의보다는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공직사회의 과잉충성으로 보는 여론의 눈초리가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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