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5주년> ⑫"6·25 끝나지 않았다…국군포로들 여전히 북에"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 "대한민국 정부에 섭섭하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22 07:00:27

△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 회장. 사진은 유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국군포로 65주년 억류감금 김정은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기자회견'에서 북한 억류 당시 경험을 증언하는 모습이다. 북한인권단체 물망초 등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60여년간 국군포로를 불법으로 억류·감금하면서 강제노역을 시켰다며 김 위원장을 '계속되는 전쟁범죄자'로 ICC에 제소할 계획을 밝혔다. 2015.6.22.<<연합뉴스DB>>

⑫"6·25 끝나지 않았다…국군포로들 여전히 북에"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 "대한민국 정부에 섭섭하다"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6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통일도 안 되고, 화해도 안 되고, 국군포로 문제도 해결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고 섭섭합니다."

유영복(85) 귀환국군용사회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북에 남은 사람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나도 지쳐간다"며 씁쓸해했다.

육군 제5사단 소총수였던 유 회장은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그는 "북한에 47년간 억류돼 그중 37년간은 검덕광산 등 광산에서 일했다"며 "북한이 늙어서 부려먹지 못하고 쓸모없게 되자 방치한 틈을 타 2000년에 두만강을 건너 간신히 탈출했다"고 말했다.

지하로 1천m 이상 들어가야 하는 막장은 악취로 숨이 막히고 땀이 범벅돼 피부가 아렸다. 그는 "팔,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약과고 '오늘도 누가 죽었구나'하는 사고가 매일 같이 일어났다"고 회고했다.

"'내무성 건설대'라는 이름으로 광산에서 고된 노동을 하던 국군포로들 사이에서 '다같이 탈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며 반발심이 커지자 북한 당국은 1956년 6월 '내각 결정 143호'를 발표하고 공민증을 나눠줬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공민증을 받아 집단생활을 벗어난 국군포로들에게는 여전히 고통과 설움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사회에 나와서도 당국과 이웃들의 감시와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며 "자식들까지도 '국군포로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져 노동당 입당이나 군 입대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를 비롯한 국군포로들은 조금만 버티면 남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국군포로들은 '우리 상황이 10년, 20년 가겠느냐,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이 있고 지휘관들이 우리를 기억한다.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찾으러 올 거다'라며 서로를 격려했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우리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그는 사선을 넘어 자력으로 남한 땅을 밟고 헤어진 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북한은 국군포로가 없다고 하는데, 귀환용사가 없고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북한 말대로 변절자, 배신자, 투항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며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 목숨을 걸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그는 재차 털어놨다. 국군포로 문제는 국가의 '자존심',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정부가 얘기해도 북한에서 발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 해도 정부가 노력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국군포로를 이렇게 방치하면 누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하겠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고 강조하며 "이제는 북에 남은 국군포로들도 고령이 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끝까지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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