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수교 반세기…'1965 체제' 극복 방안 모색돼야

부자동네타임즈

| 2015-06-21 17:02:34

[ 부자동네타임즈] 1965년 6월 22일. 한국과 일본은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한일협정에 서명하면서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 후 50년. 냉전과 경제 도약의 시대를 거치면서 한일은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했다. 수교 이후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청구권 자금은 우리 경제도약의 마중물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일본이 2차대전 패전 후 단기간에 세계 경제강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한국전쟁 특수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큰 상처를 줬고, 그와 동시에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특수한 이웃'이 한일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수교후 50년은 양국 간 갈등과 반목의 역사이기도 했다. 과거사에 대한 뿌리깊은 인식차가 그 원인이었다. 일본 지도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 왜곡 등 갈등의 전선은 곳곳에 즐비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본 내에서 진전된 과거사 입장 표명이 나오기도 했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의 염' 언급,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침략전쟁 첫 사과 담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일본사회의 급격한 우경화 움직임은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로 치달았고, 이명박 정부와 노다 정권 간 위안부 및 독도문제 대립은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연결되면서 한일관계는 급랭했다. 이후 들어선 아베 정권의 과거사 역주행 행보는 우리가 보아온 그대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것이 한일 관계의 현주소다.



지난 반세기 과거사 갈등은 비단 양국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50년 전 협정 체결 당시 과거사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한일 협정에서 일본 측의 강한 반대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문구를 담지 못한 채 과거사 문제를 서둘러 봉합한 데 따른 불가피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1965년 체제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는 이유다. 50년 전에 비해 한일 양국의 위상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과거 일본에 원조의 대상이었던 한국은 이제 협력과 경쟁을 하는 나라로 변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 경제적 암흑기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의 유수한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는 과거 수직적 한일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한일 양국의 견해차 역시 이런 시각 변경 요구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 국가 간 협정을 새로 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청구권 협정의 해석 불일치로 인한 양국 간 인식차만큼은 상호 토론과 논의를 거쳐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일본은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는 '개인 청구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입장이다. 일제 식민 피해자의 구제를 외면한 미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이 낳은 부산물인 것이다. 전범국의 오명을 벗으려 했던 일본과 경제 발전이 시급했던 한국의 필요에 따라 체결된 어설픈 과거사 봉합은 오히려 한일 간 진정한 화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한일 수교 50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다각적인 교섭을 진행 중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한일 양국 정상이 22일 상대국 대사관 기념식 리셉션에 참석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실현이 된다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위급 외교 접촉이 아무리 활성화된다 해도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역사인식 공유 없이는 언제든 갈등과 대결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사상누각인 셈이다. 한일 양국이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형성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상호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인지 심도 있게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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