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법적 책임 대상 아닌 문단 도덕성·권력 문제
문학계 "이제 의혹제기 단계…공론화 기회 달라"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20 11:54:49
표절은 법적 책임 대상 아닌 문단 도덕성·권력 문제
문학계 "이제 의혹제기 단계…공론화 기회 달라"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문학계 내에서 제기돼 일파만파 번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 논란이 이에 속하지 않은 한 학술단체의 검찰 고발로 치달으면서 전개 방향에 대한 우려가 문단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20일 문학계에선 법적 책임 공방으로 비화될 경우 애초 표절 의혹을 첫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45)이 주장하는 바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학의 위기와 맞물린 '문학권력'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론화 또한 곁가지로 휩쓸려버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부각된 쟁점은 신 작가의 단편 '전설'(1996년작)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의 시비 규명이다. 이와 관련해 신 작가는 17일 짧은 해명을 통해 표절 의혹을 일축했으며, '전설'이 포함된 소설집 출간사인 '창작과 비평'도 "표절 운운은 문제가 있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명백히 드러난 구절의 유사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의 섣부른 대응은 문학계 반발은 물론 여론의 엄청난 뭇매로 되돌아왔다. 창비와 신 작가의 문제를 넘어 표절 문제를 눈감도록 만드는 '문학권력'의 타락 문제로까지 논쟁의 영역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이 같이 문학계 내에서 그간 묻혀온 해묵은 논쟁이 점화될 즈음, 외부에서 제기된 검찰 고발 소식이 들려오자 문학계 내에선 즉각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법적으로 표절을 가릴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데다가 소모적인 법적 공방이 본말을 전도하거나 논쟁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논란이 엉뚱하게 확산되는 건 1차적으로 신 작가가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자성이 나온다.
오는 23일 신 작가 표절 의혹에 관한 긴급 토론회를 예고한 한국작가회의는 "작가 스스로 나서서 독자와 동료들에게 명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며 사과해 주기를 기다렸다"며 그러나 "아무런 대응 움직임이 없는 와중에 검찰 수사를 촉발하는 해괴한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표절 문제를 놓고 벌이는 공론화의 과정은 작가 입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일 수 있다. 그러나 창비가 앞서 주장한 바대로 신 작가의 '전설'이 '우국'의 표절작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평론가 박찬효는 지난 2007년 출간된 '표절: 인문학적 성찰'(집문당)에 실린 '현대소설에서의 표절 논리: 신경숙의 '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중심으로'에서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린 정문순 평론가의 전면 표절 의혹 주장에 반박 논리를 폈다. 표절 판정엔 "세밀한 텍스트 분석을 동반해야" 하며 두 작품은 인문학적 시선으로 볼 때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정 평론가는 당시 기고문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를 통해신 작가의 '전설'이 '우국'과 텍스트는 물론 모티브와 구성, 내용도 유사한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평론가도 "'문장 도용 여부 파악 작업'과 '패턴 테스트'를 '우국'과 '전설'에 기계적으로 적용했을 때 두 작품은 표절 관계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건 문학계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미 문단 내에선 두 작품의 유사성과 표절성에 대한 시비가 줄기차게 이어져왔음에도 신 작가가 덜컥 "'우국'의 존재를 몰랐다"고 일축해버린 것이다.
권성우 평론가의 지적대로 이번 논란은 "한국문단과 평단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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