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는 유럽 제국주의의 팽창 도구"

메리 루이스 프랫 '제국의 시선' 완역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19 14:50:21

"여행기는 유럽 제국주의의 팽창 도구"

메리 루이스 프랫 '제국의 시선'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쿠르드인들을 처음으로 독가스 공격한 이는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었다.

1919년 처칠은 쿠르드인을 겨냥해 "나는 독가스 사용에 대한 이 같은 신중함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문명화하지 않은 종족들을 향해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미국 뉴욕대학 스페인·포르투갈어문학과 교수인 여성 문화사학자 메리 루이스 프랫(Mary Louise Pratt)은 1992년 영국 루틀리지(Routledge)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온 자신의 저서 '제국의 시선: 여행기와 문화횡단'(Imperial Eyes: Travel Writing and Transculturation)의 2007년 개정판 서문에서 이 일을 거론한다.

그가 이 일을 끄집어 낸 이유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문학도이자 평론가인 김남혁 씨가 개정판을 저본 삼아 번역해 최근 국내에 나온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다지 생경하지는 않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털리즘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데 프랫이 사이드와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지점은 '오리엔털리즘'이 서구의 동양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과 침략,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오리엔탈리즘)를 강조한데 견주어, 프랫은 그에 대한 제3세계의 대응이나 응전 역시 비중 있게 다뤘다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두 지점이 충돌하면서 교섭하는 지대를 프랫은 '접촉지대'(contact zon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그 과정을 '문화횡단'(transcultur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프랫은 공격과 방어, 도전과 응전이라는 도식이 아니라, 오히려 두 흐름 저변의 공통분모를 주목한다.

그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지역은 그의 전공답게 주로 아메리카 대륙이며, 다루는 시기는 17세기 이래 현대까지다. 그의 이런 연구에서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주된 분석 대상이 '여행기'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책 전체의 주된 문제의식은 유럽의 경제적인 팽창 과정과 여행기가 맺고 있는 다기(多岐)한 관계들이다."(252쪽)

더 간단히 말하면 신대륙으로 발견된 남아메리카가 스페인 식민 치하로 본격적으로 들어간 이래 유럽인들이 남긴 남아메리카 관련 여행기가 서유럽 제국주의의 침탈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랫이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인물이 근대 지리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이다. 1799년 이래 1804년 남아메리카를 탐험한 경험을 그는 여행기를 포함한 40권에 달하는 단행본으로 정리했다.

이런 집필 활동으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한 그를 두고 남아메리카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눈으로 아메리카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펜으로는 아메리카를 아메리카 고유의 자연만큼이나 아름답게 채색해준 위대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프랫에 따르면 폰 훔볼트는 "남아메리카를 다른 무엇보다 자연으로 재발명했다". 그에게 남아메리카는 "극적이고 비범한 자연이자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압도해버리는 일종의 스펙터클"이었으며 "인간에게 알려지고 소유되기 위해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갖가지 것들의 생명력에 충전되고 변화하는 자연"이었다.

하지만 프랫에 따르면 이런 남아메리카 이미지는 실제의 남아메리카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그가 찾을 당시 아메리카는 이미 "역사라고는 시초의 역사밖에 없는" 대륙이 더 이상 아니었다. 프랫은 이렇게 폰 훔볼트가 그린 남아메리카의 "시원적인 자연상태는 대상을 변형시키는 유럽의 개입에 대한 전망과 관련된 상태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 무렵 유럽인의 남미 관련 여행기는 이처럼 남미를 '제국의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제국의 시선은 만약 누군가를 본다면 그들의 게으른 기질을 증명할 수 있도록 쉬고 있는 사람만 보면 됐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불결한 기질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로지 더러운 것들만 보면 됐다."(343쪽)

그렇다면 이런 외부의 시선에 남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프랫은 식민지 출신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를 주요한 근거로 삼아 그것을 탐구한다. 프랫에 따르면 당연히 이들은 유럽인들이 남긴 여행문학과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컨대 19세기 스페인어권 중남미 출신 작가들은 남미를 "자주적이고 해방된 문화를 창조"하려는 사회로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프랫에 따르면 이들 역시 "유럽의 가치와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했다고 한다.

현실문화, 584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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